한국을 포함한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5개국 취재단이 24일 오전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에 도착 예정이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진 풍계리 핵실험장 공개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앞서 남측 공동취재진 8명 등은 전날 오후 7시 북한 강원도 원산에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으로 가는 특별전용열차에 올랐다. 취재진은 원산에서 총 416㎞ 떨어진 재덕역까지 열차를 타고 이동, 그곳에서 21㎞가량 떨어진 풍계리 핵실험장까지 차량 및 도보로 이동한다.
재덕역에서 만탑산 부근으로 올라가면 경비시설과 기술자 체류 구역이 있고 그 위에 갱도 지역이 있다. 이번 핵실험장 폐기식은 24, 25일 사이에 기상 상황 등을 고려해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단 핵실험장 폐기 영상과 기사는 취재단이 원산으로 복귀한 뒤 송출할 예정이어서 공개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핵실험 최적의 입지… 달팽이관 모양 ‘수평 갱도’
풍계리 핵실험장은 2006년부터 2017년까지 여섯 차례 핵실험이 진행된 북한 핵무력 연구개발의 핵심지역이다. 함경북도 길주군 시내에서 약 42㎞ 떨어진 만탑산 계곡에 위치해 있다.
풍계리는 북한 지역에서 핵실험을 하기에 가장 좋은 입지로 평가된다. 해발 2205m의 만탑산을 비롯해 기운봉(1874m) 학무산(1642m) 등 해발 1000m 이상의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암박은 화강암으로 이뤄져 핵실험 후 나오는 방사성 물질 유출을 최소화할 수 있다.
북한은 이곳에 달팽이관 모양으로 갱도를 파고 차단문과 격벽을 여러 개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개의 갱도에는 속으로 들어갈수록 여러 갈래의 ‘가지 갱도’가 뚫려있다. 2번 갱도에서 다섯 차례의 핵실험이 진행된 것도 여러 갈래의 가지 갱도 때문이다.
갱도는 수평 구로조 이뤄져 있다. 통상적으로 핵실험장은 땅을 아래로 파고 들어가는 수직 갱도 형태지만 미국 군사위성 등에 포착될 위험 등을 고려해 수평 구조로 만든 것으로 군 당국은 추측하고 있다.
차단문은 총 9개다. 달팽이관 모양의 가장 안쪽에 설치된 핵폭발 장치를 터트리면 가스나 잔해가 갱도를 따라 급속히 퍼지는데 이를 차단하기 위한 장치다. 여기에 핵폭풍·잔해 차단벽을 3중으로 설치했다. 핵폭발 잔해를 차단하고 폭발 당시 힘이 차단문에 급격하게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한 세 곳의 격벽인 셈이다.
군 전문가들은 갱도 속의 차단문과 차단문 사이에도 되메우기 작업을 해서 충격을 흡수하고 핵물질의 유출을 막도록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되메우기는 콘크리트, 목재 등으로 갱도 일부를 다시 차단하는 것이다.
◆1, 2번 갱도 사용 중단… 김정은 “갱도 두 개 더 있어”
풍계리 핵실험장은 총 4개 갱도로 이뤄져 있다. 동쪽에 위치한 1번 갱도는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한 곳으로 핵실험 직후 붕괴돼 다시 사용되지 않았다.
북쪽으로 난 2번 갱도에서는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2~6차 핵실험이 이루어졌다. 사상 최대 규모였던 지난해 9월 6차 핵실험으로 지반이 붕괴되면서 이곳 역시 사용할 수 없는 상태로 알려졌다.
서쪽의 3번 갱도와 남쪽의 4번 갱도에서는 단 한 번의 핵실험도 실시되지 않았다. 3번 갱도는 2012년 3월 굴착 완료 후 현재까지 유지·관리 중인 것으로 전해지며, 2번 갱도에서 약 150m 남쪽에 위치한 4번 갱도는 지난해 10월부터 굴착을 재개했다.
특히 4번 갱도는 4~5차 핵실험 준비 중 굴착을 중단했다가 최근에 재개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4번 갱도 굴착 정황이 위성사진에 포착되기도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일부에서 못쓰게 된 것을 폐쇄한다고 하는데, 와서 보면 알겠지만 풍계리 실험장에 기존 시설보다 더 큰 갱도가 두 개 더 있고 이는 아주 건재하다”고 말한 바 있다.
◆무너트리고 봉인…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절차는
핵실험장 폐쇄는 갱도 내부 여러 곳에 다량의 고성능 폭약을 설치하고 동시에 기폭시켜 무너트리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이 공언한 대로 1, 2번 갱도는 물론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3, 4번 갱도도 파괴한다.
이후 입구 역시 폭약으로 무너뜨려 핵실험장을 영구 폐쇄할 것으로 예상된다. 입구 바깥에 들어선 관측설비와 연구소, 경비용 건물 등도 순차적으로 철거한다. 부대시설 철거까지 마치면 핵실험장 관련 인력은 모두 철수하고 주변 지역을 완전히 통제해 외부인의 출입을 전면 금지한다. 방사성 물질 유출 우려에 따른 안전 조치로 보인다.
취재단은 북한이 마련한 전망대에서 갱도 폭파 과정을 참관한다. 다만 취재진은 그동안 위성사진 등으로 알고 있던 기술자 체류 시설이나 창고 등 일부 시설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북한이 폐기식에 앞서 일부 시설의 철거 작업을 진행하는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3번 갱도에서는 계측장비와 도화선 등으로 추정되는 선(線) 철거 작업이 포착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폭발 충격으로 인한 2차 피해 우려가 있는 만큼 폭약을 암반에 삽입해 폭발시키는 ‘내폭’ 방식을 사용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내폭 방식은 도심에 지하철 공사를 할 때도 사용하는 방법으로, 원하는 부분만 붕괴시키면서도 외부에 가해지는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