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2월은 학부모들이 입학을 앞둔 자녀의 교복을 구매하는 시기다. 일본 도쿄의 특별구인 주오구에 사는 A씨도 최근 아이의 교복을 사러 시내 백화점에 갔다. 아이가 입학할 학교는 긴자의 번화가에 있는 구립 타이메이 초등학교. 이번 새로 들어오는 1학년부터 새 교복을 도입했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아르마니’에 의뢰해 디자인한 교복이었다.
브랜드가 말해주듯 놀라운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여분의 셔츠까지 모두 더하면 총 9만엔(약 90만원)이 들었다. 이전 교복은 겉옷·셔츠·바지·모자 등을 다 더해도 남학생이 약 1만8000엔(약 18만원), 여학생이 약 1만9000엔(약 19만원)이었다. 4배 이상 교복 값이 오른 셈이다.
A씨의 아이는 키가 120㎝가 안 되지만, 교복 상하의를 각각 130㎝, 140㎝ 신장에 맞는 옷을 샀다. 그는 “안타깝긴 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서 조금이라도 오래 입히고 싶다”며 “예전 교복이었다면 아이 몸에 맞는 옷을 샀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프포스트재팬은 8일 명품 교복으로 학부모 부담을 가중시킨 일본의 한 구립 초등학교 이야기를 전했다. 학교장은 새 교복을 도입하면서 학부모들과의 협의도 거치지도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 교장의 ‘결정’
A씨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특별승인학교’다. 긴자5가의 번화가 모퉁이에 있는 타이메이 초등학교는 올해 140주년을 맞는다. 본래 공립학교는 지정된 통학구역에 사는 학생만 다닐 수 있지만, 학생이 적은 상업지역 등의 경우 특별승인학교에서 구내 전역의 학생을 받을 수 있다.
“공립 초등학교 교복이 왜 이렇게 비싼 브랜드의 디자인을 선택하는지 모르겠다”던 A씨는 “한동안은 계속 우울했다”고 말했다. 그는 “브랜드가 아니라 좋은 소재를 기준으로 옷을 선택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이들에게 ‘비싸면 좋고 싸면 나쁘다’는 고정관념이 생길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A씨가 새 교복에 대한 공지를 받은 건 지난해 9월이었다. 입학이 채 반 년 남지 않은 때였다. 학교에선 새 교복을 정하면서 학부모들과의 협의체를 만들어 상의하는 일도 없었다. 그는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며 “학교장이 보낸 문서를 읽어봤지만 뭘 하고 싶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학교가 새 교복을 검토한 건 2015년 무렵인데 실제 공표한 것은 지난해 9월 22일이었다. 이를 주도한 건 교장이었다. 그는 “시대의 변화를 체감시키면서 우리 초등학교의 정체성을 육성해가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학교는 학문뿐 아니라 윤리적인 사고와 집단생활을 동시에 배우는 곳”이라며 “‘복육’(服育·복장교육)이라 생각하고 배움의 기회를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교복 선택을 기본적으로 학교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 문부과학성은 교복의 선택과 결정에 대해 특별한 통지나 안내를 하고 있지 않다. 다만 학교 관계자와 학부모, 지역주민 등이 함께 기구를 만들고 학부모와 학생을 상대로 옷의 소재·가격·디자인에 대해 설문조사를 벌여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학교에선 협의체나 사전조사가 없었다. 사실상 교장이 혼자 결정한 것이다. 그는 허프포스트재팬에 보낸 편지에서 “새 교복 도입은 새 시대를 위한 교육을 구현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해 내린 판단이었다”며 “교무를 담당하는 교장으로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략적인 것이 결정된 뒤 PTA(학부모-교사 협의체) 회장과 임원들에게 보고했기 때문에 (그들이) 선정 과정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왜 아르마니 디자인이었지에 대해서는 “긴자의 백화점에 있는 여러 사업자들과 제휴할 수 있는지 알아봤지만 ‘교육을 위한 옷’이라는 교육정책에 동참하고 협력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의사를 표시한 곳이 아르마니였다”며 “아르마니는 아동복도 다루고 있어서 실용성과 기능성을 중시한 교복을 제작하는 데 있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비판의 목소리
하지만 새 교복이 공표된 뒤 구 교육위원회로 학부모들의 불만이 전해졌다. ‘가격이 비싸다’는 ‘의견부터 의사결정을 하기까지 설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변경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등이 있었다. 이에 교육위원회는 학교장이 학부모들에게 상황을 재차 설명하고 불안을 불식시키도록 권고했다. 교장은 교복에 대한 생각을 학부모들에게 전달하고 문서화해 교육위원회에 전달했다.
허프포스트재팬은 공교육 영역에서도 학부모 부담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며 이 같은 사례를 단순히 특이한 일탈로 치부할 게 아니라고 분석했다. 비싼 교복이 특정 계층 아이들의 입학에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재무행정연구소 관계자는 “교장이 복육 효과를 말한 건 교복도 일종의 ‘교재’로 여긴다는 뜻인데, 문무과학성은 ‘보조교재 구입에 경제적 부담이 발생하면 그 부담을 과중시키지 않도록 유의하라’고 요구한다”면서 “이런 취지를 감안하면 고액의 교복으로 ‘복육’을 한다는 교장의 말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