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밀양… 참사 때마다 더 열받게 하는 정치권

입력 2018-01-29 05:00
27일 오후 경남 밀양시 가곡동 세종병원 화재현장을 찾은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관계자로부터 현장상황을 전해 듣고 있다. 뉴시스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이후 한 달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국회에서 소방안전 관련 법안 정비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해당 상임위원회는 지난 10일 소방안전 관련 법안 5건을 일괄 처리하며 뒤늦게 대책 마련에 속도를 냈다. 그러나 개헌과 정치보복 논란 등 주요 쟁점을 두고 여야 간 치열한 기싸움이 예상되는 2월 임시국회에서 해당 법안들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까지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20대 국회 초반부터 최근까지 국회에는 다양한 소방안전 관련 법안 제출돼 있다. 소방차 등 긴급자동차의 통행을 방해할 경우 대형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곳을 주정차특별금지구역으로 지정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2017년 3월 발의)이나, 일정규모 이상 공동주택에 소방차전용주차구역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소방기본법 개정안(2016년 11월 발의)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제천 화재 이전까지 해당 법안에 대한 검토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달 21일 제천 화재 참사 이후부터 최근 약 한달 새 소방 안전과 관련된 개정안은 추가로 13건이나 발의됐다. 소방차의 통행을 위해 주·정차 차량을 강제 처분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이나 소방활동 중 발생한 재산상 손해 배상 책임을 해당 소방공무원에게 묻지 못하도록 한 내용 등이 포함됐다. 제천 화재 당시 조기 진압을 방해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조치들로 지적된 내용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지난 10일 안전 및 선거법심사소위원회를 열어 소방기본법 개정안 등 소방안전 관련법 5건을 일괄 처리했다. 국회가 소방안전을 위해 필수적인 법안 처리를 미루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지자, 국회가 폐회 중임에도 행정안전위 소위를 열어 1년 넘게 잠자던 법안들을 부랴부랴 통과시킨 것이다. 소방차 통행을 위한 주정차금지구역을 지정하고 공동주택에 소방차전용주차구역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법안들이 마침내 상임위 벽을 넘었다.

그러나 법안 최종 확정까지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거쳐야 한다. 여야 모두 소방안전 관련 법안 개정 필요성에 동의하는 만큼 2월 임시국회에서 쉽게 처리될 가능성도 있지만, 6·13 지방선거를 앞둔 여야 간 복잡한 상황에 발목을 잡히지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여권 관계자는 28일 “30일부터 2월 임시국회가 본격 가동되지만 여야가 개헌과 정치보복 논란 등 쟁점으로 대립할 경우, 국회가 공전 돼 소방안전 법안처리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밀양참사 ‘네 탓 공방’… 여당은 반성 없고, 야당은 정치 공세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마저 정치싸움의 장으로 끌어들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여당과 제1야당이 사고 원인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은 뒷전이고 ‘네 탓 공방’만 벌이고 있다는 비난에 휩싸였다. 민주당은 반성이 없고, 한국당은 정치공세에만 혈안이 됐다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가 여당 공격에 앞장섰다. 그는 28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해난사고를 정치에 이용해 집권한 세력들이 100여명에 이르는 억울한 죽음이 있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며 “후안무치한 정권이 큰소리 뻥뻥 치는 뻔뻔한 세상”이라고 주장했다. 제천·밀양 화재 등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발생한 사고들을 세월호 사건과 연관시킨 것이다.

홍 대표는 27일엔 밀양 화재 참사 현장을 방문해 “내 기억으로는 (경남지사를 지냈던) 4년4개월 동안 화재로 인한 인명사고는 (경남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예방행정이 중요한데 이 정부는 정치보복에 바빠서 예방행정을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홍 대표는 또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총리가 나가는 것이 맞지 않나”라며 이낙연 국무총리 책임론도 제기했다. 홍 대표는 앞서 올린 페이스북 글에서 “이 정권의 4대 핵심 키워드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정치는 보복, 경제는 무능, 외교는 굴욕, 사회는 재앙”이라며 “이런 말들이 회자될 때 정권은 무너진다”고 주장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지난 26일 밀양 화재 현장을 찾아 “문재인 대통령은 크게 사과해야 한다. 청와대와 내각은 총사퇴해야 한다”며 “북한 현송월(삼지연관현악단 단장) 뒤치다꺼리한다고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발끈했다. 박완주 수석대변인은 김 원내대표 발언에 대해 “한국당이 평창올림픽에 이어 밀양 화재 참사마저 색깔론 공세를 퍼붓는 행태를 보이는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반격했다. 김태년 정책위의장은 트위터에 “(홍 대표는) 소방공무원 확충을 반대했고 지방 소방을 책임지는 경남지사도 꼼수 사퇴로 공석을 만든 장본인”이라며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는 분”이라고 쏘아붙였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양비론을 펼쳤다. 국민의당은 “밀양 참사 이후 민주당과 한국당이 정쟁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는 28일 밀양을 다시 찾아 “밀양 참사는 정치권 모두의 책임”이라며 “여야를 넘어 종합 대책을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윤해 노용택 신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