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7일 경남 밀양의 세종병원 화재참사 현장에서 유족들을 만나 위로했다. 사랑하는 이를 허망하게 잃은 유족들은 문 대통령에게 많은 말을 했다. 대부분 호소였고, 부탁이었다. 취재진 없이 이뤄진 대통령과 유족의 진솔한 대화 내용을 청와대가 밝혔다. 유족의 호소는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① “우리 사회 안전대책, 너무 취약합니다”
검은색 정장 차림의 문 대통령은 전용열차로 이날 오전 10시45분쯤 밀양역에 도착했다. 현장 방문에는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장하성 정책실장,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주영훈 경호처장, 박수현 대변인 등이 함께했다. 지난해 12월 22일 충북 제천 복합건물 화재 현장 방문 때보다 더 많은 청와대 참모진이 동행했다.
문 대통령은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밀양 문화체육회관을 찾아 조문했다. 유가족들은 대통령을 보자 오열했다. 문 대통령은 유가족들에게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느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국가가 제대로 지켜드리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드렸고, 국민과 함께 노력하는 가운데 이런 화재참사가 연이어 발생하여 안타깝고 죄송함을 금할 길이 없다"고 했다.
이에 유가족들은 "대통령이 좋은 일로 밀양을 찾았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참사로 밀양을 찾은 대통령 마음도 아프겠지만 유가족의 서러운 마음을 어떻게 말로 다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대통령이 이렇게 찾아와 위로해 주니 감사하다. 우리나라 안전대책이 너무 취약하니 제대로 좀 해 달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현장에서 유가족 70~80명을 만났다. 유족들과 일일이 악수하면서 고인과의 가족 관계를 물으며 위로했다. 한 유족은 "사람이 아프고 약해질 때 찾는 곳이 병원인데 병원에 와서 목숨을 잃은 것이 어이없고 화가 난다. 대통령이 꼼꼼히 챙겨 기본부터 제대로 해 달라"고 주문했다.
세종병원 의료진의 유가족들은 "마음만 먹었으면 얼마든지 살아나올 수 있었을 텐데 마지막까지 환자들을 대피시키려 하다가 희생된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 이 희생들을 국가가 잊지 말고 잘 받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② “이번에 보니 소방관들이 너무 고생하고 장비도 열악”
문 대통령이 찾은 합동분향소에는 37명의 영정이 놓여 있었다. 문 대통령은 국화를 들고 영정마다 일일이 애도를 표했다. 밀양시 관계자는 상황을 설명하면서 "중상자가 9분이 계시다. (사망자가) 한두 분 더 생길 여지가 있어서 영정 자리를 좀 비워뒀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문 대통령과 대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유족은 "대통령께서 사람 사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여러 가지 공약도 했고 노력을 하고 있는 것도 안다. 이번 현장에서 보니 소방관들이 너무 고생하고 장비도 열악한데, 소방관들이 국민을 위해 제대로 헌신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다른 유족은 “유가족이 아니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말하겠다”고 운을 뗀 뒤 "참여정부 시절 만든 재난대응 매뉴얼이 다 없어졌다고 하는데 그것을 다시 찾아 운영해 달라. 어떤 소방장비는 소방관이 사비로 구입해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대통령이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가? 대통령이 직접 신경 쓰고 챙겨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유족들에게서 ‘소방관이 너무 고생한다’는 말을 들은 문 대통령은 화재 현장에서 근무 중인 소방관들을 만나 "최선을 다해도 결과가 좋지 않을 때 국민의 질책을 받는 것이 소방관의 숙명이다. 전 과정을 살펴서 결론을 내야 하겠지만, 이번에는 화재 출동도 신속하게 이루어졌고 화재도 1층에서 2층으로 번지지 않도록 초기 진압도 잘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중환자들이 있는 병원의 경우, 유독가스와 연기에 매우 취약할 수 있으니 소방안전관리에서 그 점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함께해 나가자"고 강종했다. 특히 침통한 표정의 조종묵 소방청장의 손을 잡고 어깨를 두드리며 "대통령의 마음도 지금 소방청장의 마음과 똑같으니 힘을 내라"고 격려했다.
③ “유족들 마음이 두 번 다치지 않게…”
여러 유족이 가족을 잃은 아픔과 고통을 호소했다. 그런 아픔을 딛고 장례 절차 등을 치러야 하는 상황을 언급하며 한 유족은 "희생자 수습 후 관리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어 그것을 보아야 하는 유족으로서는 너무 고통스럽다. 유족들의 마음이 두 번 다치지 않도록 장례 절차 등에 소홀함이 없도록 해 달라"고 말했다.
또 다른 유족은 "구조 투입이 늦어 살릴 수 있는 생명도 잃었다. 구조 투입은 상부의 지시가 없어도 현장의 판단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번에 그 부분이 잘못됐다. 이 과정을 잘 살펴서 고쳐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올해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챙겨 나가겠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지만 우리가 함께 노력해 가야 한다. 이번 참사는 지난번 제천 화재와 좀 다른 양상이 있어 보건복지부를 중앙재난수습단으로 하고, 행정안전부로 하여금 지원단의 역할을 하도록 했다. 신속한 원인 파악과 사고 수습부터 재발 방지 대책까지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자원봉사자들을 일일이 격려하며 "이번에 밀양시민들께 큰 감명을 받았다. 구조된 환자들을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모포나 핫팩을 가지고 나와 전해 주기도 하고, 소방관과 경찰, 공무원들에게 따뜻한 차를 제공하는 것을 보면서 아픔을 함께 치유하려는 노력을 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밀양시장께서 시민들께 대통령의 인사를 꼭 전해 달라. 다음에는 꼭 좋은 일로 밀양을 다시 찾아오겠다"고 감사와 격려 인사를 했습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