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균 “배우 안됐음 어쩔뻔” 열혈 청년의 연기사랑 [인터뷰]

입력 2018-01-21 11:10 수정 2018-01-21 11:10
배우 이재균. 나인스토리 제공

데뷔 8년차, 배우 이재균(28)은 성실히도 제 길을 걸어왔다. 매년 무대에 섰다. 연극과 뮤지컬을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그의 실력과 열정을 알아보는 이들은 점점 늘어났다. 그리고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이재균은 무려 네 편의 드라마에 연달아 출연했다. 2014년 매체 연기를 시작한 이래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친 셈이다. 매 작품 전혀 다른 색깔의 캐릭터를 소화했는데, 어느 것 하나 몸에 익지 않은 배역이 없었다.

‘명불허전’에서는 헐렁한 구석이 있는 한의사, ‘아르곤’(이상 tvN)에서는 발로 뛰는 열혈 기자, ‘당신이 잠든 사이에’(SBS)에서는 슬픈 사연을 지닌 경찰, ‘20세기 소년소녀’(MBC)에서는 순진하고 엉뚱한 매니저로 각각 분했다. 방영 시기가 몰려 준비기간이 충분치 않았음에도 그는 매번 노련하게 역할에 녹아들었다.

그뿐인가. 뮤지컬 ‘뉴시즈’와 연극 ‘청춘예찬’으로 관객을 만났고, 영화 ‘박화영’ ‘세트 플레이’ 촬영까지 마쳤다. 그야말로 놀라운 ‘열일’ 행보. 최근 서울 용산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재균은 “스케줄이 빠듯하긴 했다”면서도 “무조건 상대배우를 믿고 했다. 많이들 도와주셔서 재미있게 할 수 있었다”고 웃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아르곤' '명불허전' '당잠사' '이소소' 출연 모습. 각 방송화면 캡처

작품마다 철저한 캐릭터 분석을 거쳤다. 실제로 며칠 밤을 새서 피곤한 기자의 모습을 표현했고, 의학 관련 수업을 받고 나서 한의사 역에 임했으며, 매니저에게 도움을 받아 극 중 인물을 구체화시켰다. 그럼에도 “매번 만족감보다 아쉬움이 크다.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든다”는 게 그의 말이다.

지난달부터 공연 중인 연극 ‘블라인드’를 준비할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극 중 시각을 잃고 세상과 단절된 청년 루벤 역을 맡은 이재균은 ‘이해’부터 해나갔다. “어떤 역이든 그가 느꼈을 법한 감정을 느껴보려는 편이에요. 이번 작품의 경우 앞이 안 보이는 렌즈를 끼고 돌아다녀보기도 했죠. 그렇게라도 간접체험을 해야 인물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연기에 있어서만큼은 못 말리는 ‘완벽주의’다. 그는 “작품에 들어가기 전 ‘(역할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하면 어떡하지’란 불안감이 있다”고 털어놨다. 본인에게 가혹한 편인 것 같다는 말에는 “그런 부분에서 좀 예민하긴 하다”고 인정했다.

“예전에는 마냥 재미있어서 연기를 했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커지는 것 같아요. 계속해서 내 연기를 되짚어보게 되죠. 그럴수록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작품에 집중하자’고 스스로를 다잡곤 해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재미있게 하자’고 마음먹죠.”


어릴 적부터 노래에 재능이 있던 이재균은 고3 때 연기를 시작했다. TV에서 본 뮤지컬이 계기가 됐다. 서울예대 연기과에 진학한 그는 불의의 사고로 휴학을 한 이후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프로의 세계로 진출해 사람들을 만나고 작품을 올리면서 확신을 얻었다. ‘이거, 재미있다. 이 길로 가야겠다.’

그가 말하는 ‘연기의 재미’란 어떤 종류의 것이냐 묻자 그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런 답을 돌려줬다. “하루 온종일 생활을 하면서 반 이상 연기에 대한 생각을 해요. 그런데 그게 힘들지가 않은 거죠.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배우라는 직업을 만난 것 자체가 굉장한 행운이란다. “우연치 않게 얻어걸린 것 같은 느낌이에요. 가끔 그런 순간들 있잖아요. 사소한 행동이 뜻하지 않게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안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싶은 거요. 사실 처음엔 ‘대배우가 돼야지’란 거창한 꿈을 가졌던 건 아니에요. 근데 지금은 많이 다르죠.”


2018년에도 힘차게 달릴 준비를 마쳤다. 일단 두 편의 작품으로 연달아 안방극장을 찾을 예정이다. 오는 27일 밤 12시 방영되는 tvN ‘드라마 스테이지-파이터 최강순’과 3월 12일 첫 방송되는 MBC 새 월화드라마 ‘위대한 유혹자’. 이재균이 보여줄 ‘새로움’은 어떤 것일까.

‘파이터 최강순’은 불의에 맞선 여성들의 통쾌한 응징을 그린 단막극. 극 중 그는 ‘윤대리’로 불리는 회사원 윤형원 역을 맡았다. 차분하면서도 날카롭고 영리한 인물. 청춘남녀의 위태로운 로맨스를 그린 ‘위대한 유혹자’에선 최고 로펌의 자제 기영을 연기한다. 엘리트답게 예의 바르지만 계산이 빠르고 냉정한 성격의 소유자다.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다는 게 연기의 가장 큰 매력”이라는 이재균은 “연기를 안했다면 나라는 사람이 결코 몰랐을 감정들을 경험해보게 된다. ‘배우가 아니었다면 내가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었을까’ 싶을 때가 종종 있다”고 얘기했다.

지금 이 순간 품고 있는 꿈은 무엇이냐 물었다. 그는 오래 고민 않고 흔들림 없는 눈으로 답했다. 진솔하게, 그리고 꾸밈없이. “오랫동안 재미있게 연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연기가) 지겨워지지 않고 싶어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