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해 행복”… 곽도원이 말하는 정우성의 슬픈 눈 [인터뷰]

입력 2018-01-16 22:35
영화 '강철비'의 주연배우 곽도원. NEW 제공

영화 ‘강철비’를 들여다보면 여러 상반된 이미지들이 충돌한다. ‘강철’과 ‘비’라는 이질적인 두 단어가 조합된 제목부터 그렇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사익과 공익이, 이기주의와 이타주의가 대립한다. 그리고 이들 두 남자, 북에서 온 엄철우(정우성)와 남을 지키는 곽철우(곽도원)가 있다.

한반도에 핵전쟁 위기가 도래했다는 상황 설정.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영화가 무겁게만 흘러선 안됐다. 그 지점에서 곽도원(45)이 활약은 눈부셨다. 일에 치인 가장의 모습으로 이야기에 현실감을 불어넣었고, 숨길 수 없는 장난기로 뜻밖의 웃음을 선사했으며, 뜨거운 우정을 통해 절절한 감동까지 끌어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곽도원은 “엔딩을 보고 이 작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보통 시나리오를 읽을 때 인물에 동화되는데, (남과 북이 핵 균형을 이루는) 엔딩을 보고 그동안의 담담함이 해소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우리나라도 강대국 대열에 끼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곽철우를 연기하기 위해선 강약 조절이 관건이었다. 나라 운명이 걸린 일을 조율하는 동시에 엄철우와의 신뢰와 의리를 쌓아가야 했으니. 곽도원의 편안한 ‘현실 연기’는 정확하게 먹혀들어갔다. 관객이 숨 쉴 틈을 만드는 일은 오롯이 그의 몫이었다. 지드래곤의 ‘삐딱하게’를 부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곽도원은 “작전을 잘 짜야 한다. 감독도 그렇지만 배우도 러닝타임 안에서 강약 조절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인물이 헤쳐 나가야 할 부분도, 숨구멍도 만들어 놓는다”면서 “발성이나 톤도 신경을 쓴다. 호흡을 얼마만큼 집어넣을 것인지도 정확하게 준비한다. 인물을 어떤 형태로 만들까 하는가는 배우 스스로 해내야 하는 숙제”라고 했다.

“최악의 상황은 웃기려고 만든 부분에서 관객들이 안 웃는 거예요. 그럼 죽는 거죠. 희극연기가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과해도 안 웃고 덜해도 안 웃으니까. 차라리 슬픈 연기 같은 건 그냥 하면 되는 건데 웃음은 진짜 어려운 것 같아요. 온전히 공감이 돼야 나오는 거니까요. 희극 연기를 하시는 코미디언들 진짜 존경합니다.”

곽도원과 정우성의 완벽한 합은 이 영화 꽃이라 할 만하다. 전작 ‘아수라’(2016)에서 한 차례 호흡을 맞춘 터라 탄탄한 유대감이 형성된 상태였다. 곽도원은 “이미 서로 맛을 다 봤고 서로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존중과 믿음이 생겼다. 촬영하는 과정에서 그런 신뢰가 더 강해진 것 같다”고 얘기했다.

“저도 영화를 보고 놀란 게, 현장 분위기가 스크린에 그대로 전달되더라고요. 우리가 한 컷 한 컷 즐겁게 찍은 순간들이 오롯이 카메라에 담겨 묻어난 것 같아요. 우성이와는 ‘서로 주는 것만 받으면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우성이는) 정말 많은 준비를 해오는 배우거든요. 함께 연기하면서 너무나 행복했죠.”


배우가 아닌 ‘인간’ 정우성에게 느낀 매력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곽도원은 ‘다 아는 걸 묻느냐’는 새침한 눈빛으로 입을 뗐다. “볼수록 매력 있는 사람을 ‘볼매’라고 하는데 걔는 그냥 첫 눈에 괜찮잖아요.” 현장에는 한바탕 웃음이 터지고야 말았다.

“외모에 감춰져 있는데, 정우성의 가장 큰 매력은 눈이에요. 눈이 너무 슬픈데 그 슬픈 눈에 착함이 서려있죠. 눈빛이 백만불짜리예요. 진짜 착한 애 같아요. 사람들이 ‘잘생겼다 잘생겼다’ 하는데 ‘아니에요’ 하면 재수 없고 ‘맞아요’ 하면 웃기니까 그렇게 넘어가곤 하잖아요. 그럴 때조차도 눈빛이 참 슬프더라고요.”

연극배우 시절 생활고에 시달렸던 곽도원은 한때 연기를 그만둘까 고민하기도 했다. 영화배우로 전향한 뒤에도 단역을 전전했다. 그러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1)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반전을 꾀했다. 이어 운명적으로 만난 작품이 ‘변호인’(2013)이었다. 이 영화를 통해 사람들은 그의 진가를 알아봤다.


‘변호인’의 양우석 감독의 차기작이라는 점 또한 ‘강철비’ 출연을 결심하는 데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배우에게는 같이 작업했던 감독이 다시 불러줄 때의 그 믿음이 너무 감사하거든요. 또 다른 쓰임이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쁜 일이니까요.”

한편으로는 호기심도 꿈틀댔다 “‘변호인’ 때 얼마나 사회적 이슈거리가 많았습니까. 누구는 보네 안 보네 하는 얘기들도 있었고. ‘감독님과 함께했을 때 또 세상이 어떻게 반응할까’란 어린 아이 같은 호기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별다른 일정이 없는 한 곽도원은 제주도에 머문다. 3년 전쯤부터 서울 집을 처분하고 제주도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 차기작을 재촉하자 그는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열심히 해야죠. 영화배우 된지 몇 년 되지 않아서…. 빨리 해야죠(웃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