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처럼 형제나 자매간의 갈등과 시샘은 인류 공통의 감정이며 숙명적이다. 형제간의 경쟁, 갈등해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사회적으로 성숙될 수 경험을 하기도 하지만 극단적 때는 평생의 상처로 남기도 한다.
K는 초등학교 4학년 남자아이다. 동생에게 너무 못되게 행동하고, 집중도 하지 못하고 산만하니 ADHD 검사를 하고 싶다고 내원했다. K는 활동적이기도 했지만 ADHD는 아니었다. 오히려 많이 위축되고 우울했다. 산만하니 선생님에게 자주 야단 맞고, 동생을 괴롭히니 부모한테도 매일 혼났다. 어려선 동생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곤 했다. 부모님이 안 계실 때는 더욱 심했다. 2살 차이인 동생이 나이가 들면서 참고만 있지 않고 대들기 시작하니 폭력은 좀 줄었지만 여전히 괴롭히고 귀찮게 했다. 학교에서와는 달리 동생에게는 유독 자기 주장만 하고 고집을 피워 부모가 동생을 안쓰러했다.
기질적으로 형제는 많이 달랐다. K의 동생은 공부도 곧 잘하고 눈치도 빠르고 영리했다. 친구도 많은 편이었다. 맞벌이하는 엄마가 저녁에 퇴근을 하면 동생은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가 형에게 당한 것을 일러바쳤다. 엄마는 K를 야단쳤고 그럴수록 동생이 미워졌다. 말 주변이 부족한 K는 엄마에게 상황도 설명하지 못하고 버럭 화만 내고 심통을 부리니 부모와도 점점 사이가 멀어졌다.
하지만 찬찬히 K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릴 때는 동생을 많이 때린 게 사실이었지만 2-3년 전부터는 동생이 오히려 형을 무시하고 놀리는 적이 많았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친구가 별로 없는 K는 동생과 놀고 싶지만 동생이 놀아주지도 않아 화가 났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 볼수록 K는 엄마에 대한 원망감이 더 많은 듯 했다. 자기 마음은 몰라주고 동생 편만 드는 엄마에게 서운함과 화가 많이 나있었다. 엄마에게는 직접 화를 표현하진 못하고 그나마 만만한 동생에가 표출하면서 공격적으로 행동한 것이다.
형제나 자매간의 다툼은 매우 흔하고 당연하다. 세상에서 최초로 만난 라이벌이다. 특히 K와 같이 동생과 2살 차이 밖에 안 나는 경우는 엄마와의 애착관계가 안정적으로 형성되어 믿음이 생기기 전이니 라이벌을 만났을 때 매우 불안하다. 게다가 부모는 1살이라도 많은 형에게 양보하거나 형 노릇을 요구한다면 큰 아이 입장에서는 엄마가 더 동생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배신감을 느낀다.
자녀간의 다툼에 부모는 개입하지 않는 게 좋다. 폭력이 오가는 등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부모가 개입하게 되면 상대편만 들고 아이들은 각자 자신만 억울하다고 느낀다. 싸움이 생겼을 때 부모는 판단하는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순간 함정에 빠지게 된다. 부모는 자녀 각자의 사연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역할을 해주면 충분하다. 실컷 자기 얘기를 하게 해 주고 마음이 조금 풀리면 비슷한 상황에 다른 대안은 없을 지 아이와 같이 이야기 해 본다. 아이가 스스로 대안을 찾아보게 하는 게 더 도움이 된다.
특히 K와 같이 형이 동생보다 조금 부족한 경우엔 평소에 부모가 형에게 조금 더 대접을 해주어야 한다. 예컨데 케이크 한 조각을 나누어 주어도 똑같이 반으로 나누어 주기보다는 형에게 조금이라도 더 주는 식으로. 그래야 형도 동생을 보살필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가사일 등 서로 도와 할 수 있는 일을 시켜 협력하는 기술을 익히게 한다. 또 각자 서로에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를 알게 해 주어야 한다. 사랑을 표현할 때도 똑같은 방식보다는 아이들 각각의 개성에 따른 장점을 부각시키면서 특별한 방식으로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은 자신과 부모가 특별한 관계라고 믿으며 만족감을 얻는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