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한·일 관계에 대해 “역사문제와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을 분리해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10일 오전 10시 청와대 영빈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열고 새해 국정운영 방향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일본과 진정한 친구가 되길 바란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날 12·28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처리 방향을 밝힌 데 이어 신년사에서도 위안부 문제와 일본과의 외교 관계 사이에서 균형을 잡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청와대로 모셨다”며 위안부 문제를 먼저 언급했다. 그는 박근혜정부 시절 맺은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80여년 전 꽃다운 소녀 한 명도 지켜주지 못했던 국가가 피해 할머니들에게 다시 깊은 상처를 안겼다”며 “국가의 존재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잘못된 매듭은 풀어야 한다.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은 다시 그런 참혹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으로서 저에게 부여된 역사적 책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해드리겠다”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조치들을 취해 나가가는 과정에서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듣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은 “한·일 양국 간 공식적인 합의를 한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며 “일본과의 관계를 잘 풀어가야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날 한·일 위안부 합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일본에 재협상은 요구하지 않겠다고 한 정부의 처리발표와 같은 맥락이다.
문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은 문화적·역사적으로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며 “양국이 함께 노력해 공동 번영과 발전을 이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일관계가 미래를 향해 나아갈 때 북핵문제는 물론 다양하고 실질적인 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전날 정부는 한·일 위안부 합의에 내용·절차상 중대한 흠결이 있다면서도 일본에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고 처리 방향을 발표했다. 또 일본 정부가 출연한 화해·치유재단 기금 10억엔(약 108억원)은 우리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고, 기금의 향후 처리 방안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일본 정부 위로금 10억엔을 정부 예산으로 충당한다는 방향은 환영하지만 외교 문제라는 이유로 법적 책임을 묻지 않은 채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조치만 하겠다는 태도는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안신권 나눔의집 소장은 “잘못된 합의라면서 재협상은 안 하겠다는 것은 할머니들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근혜정부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치적으로 야합해 엉터리 합의를 했고 문재인 정부는 합의를 파기하겠다던 공약을 지키지 않고 할머니들을 기만했다”고 덧붙였다.
일본도 반발했다. 가나스기 겐지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주일 한국대사관의 이희섭 공사를 불러 “한국 정부가 합의를 변경한다면 한·일 관계 관리 불능이 된다”고 밝혔다. 서울에서는 주한 일본대사관 공사가 한국 외교부 김용길 동북아국장에게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 철거를 비롯한 합의 이행을 거듭 촉구했다. 일본 외무성 한 간부는 특히 한국이 10억엔 충당 의사를 밝힌 것을 문제 삼으며 “한국이 10억엔을 갚으면 합의 파기”라고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