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한 의사가 베푼 ‘인술(仁術)’을 잊지 않고 48년 만에 ‘따뜻한 기부’로 갚은 향토기업인이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8일 부산 고신대복음병원(병원장 임학)에 따르면 ㈜무한 대표 박종형(49)씨는 최근 병원을 찾아 “48년 전 부모님이 진 빚을 대신 갚고 싶다”며 1800만원을 기부했다.
박 대표는 1800만원 외에 “어려운 이웃을 위한 의료봉사에 써 달라”며 올해부터 매년 1800만원을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사연은 이렇다. 1970년 경남 진주시 인근 시골마을에서 찢어지게 가난한 박 대표의 아버지 박우용씨는 심한 복통으로 찾아간 복음병원에서 간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당시에는 손을 쓸 수도 없는 중병이었지만 주치의였던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1911~1995) 박사는 한 달 동안 성심성의껏 박씨를 치료했다.
박씨 가족이 가난해 병원비를 도저히 지불할 수 없는 능력이 되자 장 박사는 자신의 월급으로 박씨의 병원비를 대납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만삭의 몸에 간병으로 지쳐 임신중독까지 왔던 박 대표의 모친의 치료까지 무료로 책임져 주었다.
장 박사의 도움으로 박 대표 가족은 자택에서 부친의 임종을 맡게 되었고, 모친도 임신중독에서 회복해 무사히 순산하게 됐다. 그때 태어난 아기가 박 대표다.
박 대표의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우리가족은 장 박사님께 큰 빚이 있다. 언젠가는 꼭 갚아야 한다”며 유언을 남겼다.
박 대표는 “병원에 기부한 1800만원은 48년 전 장 박사님이 대납해줬던 부친의 병원비 금액을 요즘은 가치로 환산했을 때 대략적으로 책정한 금액”이라고 했다.
박 대표는 “우리가족에게 장 박사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세상에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사람에 대한 투자 그리고 이웃에 대한 나눔이야말로 모두가 행복해지는 시작이라는 것을 모두가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바보 의사’라 불렸던 장 박사는 평북 용천 출신으로 평양에서 의사생활을 하다 6·25 전쟁 당시 월남 후 부산 영도에 천막을 치고 병자를 치료했다.
“내가 뒷문을 열어 줄테니 나가시오.”
돈이 없어서 병원비를 낼수 없었던 가난한 환자를 병원 뒷문을 열어 도망가게 했던 일화는 장 박사의 일대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명한 일화다.
옛날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일화가 48년이 흘러 아름다운 사연이 되어 아름다운 ‘나눔의 열매’로 되돌아왔다.
부산=윤봉학 기자 bhy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