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 통화에서 ‘남북 대화를 지지한다’는 미국의 메시지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남북 대화 국면을 북핵 문제와 연계하기에는 여전히 어려움이 많다는 평가다.
자칫하면 북한의 도발을 막지 못한 채 경제적 지원만 해주며 끌려다니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청와대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지만 상황이 급변하는 탓에 아직 구체적인 해법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정교한 남북 관계 해법을 요구받고 있다. 국제사회의 제재 공세 속에서 나온 북한의 대화 제의는 단순히 남북 간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은 이후 전개될 협상 과정에서 대북 제재 공조 이탈, 별도의 경제적 지원, 대북 적대시 행위 중단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문 대통령은 이미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예정됐던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연기했다. 미국과 제재·압박 공조를 유지하면서도 북한과의 대화를 진전시켜야 하는 어려운 시험대에 선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5일 “바둑으로 치면 지금은 남과 북이 서로 10수 정도 놓고 판세를 가늠하는 상태”라며 “어느 시점에서 전투를 시작할지 각자 파악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이날 대한노인회 초청 오찬에서 “과거처럼 유약한 대화만 추구하지 않겠다”고 발언한 것도 이러한 고민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대화에만 매몰돼 북한에 주도권을 뺏기는 상황을 막고, 대화만을 위한 대화를 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국에도 한·미 간 긴밀한 소통 속에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남북 관계 진전을 북핵 문제와 어떻게 연계시킬지도 고민거리다. 남북 간 평화 분위기가 조성된다 해도 북한이 핵 협상에 나서지 않거나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하면 정부가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남북 대화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과 북한의 대화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된다고 확신한다”고 말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명시적인 답변은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남북 대화가 잘 되길 희망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답변이)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 정상이 일단 남북 대화 진행 상황을 지켜보자는 데 합의했지만 북한이 무리한 요구를 고집한다면 대북 강경책이 힘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남북 대화를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도 타격을 입게 된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