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청와대가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정기적으로 상납받았다는 의혹과 관련해 검찰의 수사 칼끝이 박근혜(65) 전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국정원 고위 간부들로부터 거액을 건네받은 혐의로 체포된 이재만(51) 전 총무비서관이 상납 고리의 ‘윗선’으로 박 전 대통령을 지목하면서 특활비가 박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국정원 특활비 상납을 지시한 주체가 박 전 대통령으로 확인될 경우 현재 1심 재판도 끝나지 않은 박 전 대통령은 뇌물 혐의로 추가 기소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검사 양석조)는 2일 이 전 비서관으로부터 “박 전 대통령 지시로 국정원 돈을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비서관은 받은 돈을 별도 금고에 관리하면서 박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사용했다는 진술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은 박근혜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4월부터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지난해 7월까지 매달 1억원의 현금을 이 전 비서관과 안봉근(51)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에게 전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전 비서관의 진술은 청와대와 국정원이 박 전 대통령의 지시·통제 하에 40억원대의 뇌물을 주고받았으며, 이 돈을 청와대에 자체 배정된 200억원대의 특활비와 별개로 관리했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국민 세금인 국정원 특활비를 박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전용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안 전 비서관뿐 아니라 최순실(61)씨에게 청와대 문건을 불법 유출한 혐의로 구속 수감중인 정호성(48)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도 국정원 돈을 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의 측근인 ‘문고리 3인방’이 모두 특활비 상납에 관여하면서 박 전 대통령이 이를 알고 있었는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여부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국정원에서 상납한 돈이 박 전 대통령 비자금이라고 의심받는 이유는 또 있다. 검찰은 이·안 전 비서관을 긴급체포하는 과정에서 혐의를 뇌물수수라고 명시하며, 국정원 특활비의 ‘대가성’ 입증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검찰은 박근혜정부 때의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청와대에 돈을 건네면서 당시 국정원현안 해결을 암묵적으로 청탁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문고리 3인방’이 실세이긴 하지만 국정원 조직개편과 예산 편성 등 핵심현안 해결을 위해서는 국정원이 대통령과 뒷거래를 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다만 검찰은 이 전 비서관이 국정원 돈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혐의를 덜기 위해 박 전 대통령을 끌어들였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 전 비서관은 상납받은 돈을 2014년 강남의 아파트 매입에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전 비서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검찰은 이 전 비서관의 신병이 확보대는대로 상납받은 돈의 구체적 용처를 확인할 방침이다.
박 전 대통령이 국정원 특활비 상납 건의 배후로 드러날 경우 박 전 대통령의 재판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박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과 1심 재판 과정에서 “단돈 1원의 사익도 추구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온만큼 결백을 주장해왔던 그동안의 논리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 검찰은 구속기간이 연장된 박 전 대통령 소환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