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서울대 캠퍼스를 누비던 신입생들을 선배들은 이렇게 불렀다. ‘똥파리.’ 신입생 학번 숫자를 독음한 ‘팔이’에 그 시절 집집마다 있었던 똥파리처럼 ‘개체수’가 많다는 의미였다. 서울대 82학번의 인원은 유독 많았다. 이들은 35년 지난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세대로 성장했다.
1. 서울대 82학번은 왜 인원이 많았나
서울대 82학번의 주축은 베이비부머의 막내 격인 1963년생이다. 우리나라에서 베이비부머는 보편적으로 한국전쟁 휴전 2년 뒤인 1955년부터 박정희의 5·16 쿠데타 2년 뒤인 1963년까지 출생자를 가리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대학에 진학한 1963년생은 모두 82학번이다.
서울대 82학번의 인원이 많았던 결정적인 원인은 갑작스럽게 바뀐 대학입시 제도였다. 전두환의 신군부는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1981년 대학 본고사를 폐지했다. 또 졸업정원제를 도입해 입학생을 졸업생의 130% 수준으로 늘렸다. 서울대는 그해 유례없는 정원미달 사태를 겼었다.
이는 그 다음해 대입을 준비한 수험생들을 서울대로 몰리게 만들었다. 상향지원이 속출했고, 학력고사 340점 만점에 180점대로 합격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입학정원 초과는 당연한 결과였다. 1982년 봄 서울대 캠퍼스는 갑자기 늘어난 신입생들로 넘쳐났다.
2. ‘똥파리’, 대한민국 현대사의 주인공이자 목격자
82학번은 유년·사춘기의 가난, 성년기의 풍요를 모두 경험했다. 두 번의 군부독재 체제를 경험했고, 부동산 거품의 마지막 혜택을 입었으며, 산업화와 민주화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한 대한민국 현대사의 주인공이자 목격자다. 서울대 82학번이 유독 많은 정계인사를 배출한 이유는 현대사의 이런 격변을 체험한 결과로 보인다.
자유한국당 나경원(법학) 의원은 원 지사와 함께 ‘똥파리’로 언급되는 정계 인사다. 나 의원의 남편인 김재호(법학) 서울고법 부장판사 역시 같은 학번 같은 과 동갑내기인 캠퍼스 커플이었다.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건을 파헤친 국회 국조특위 위원 중에서도 ‘똥파리’는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체육교육학), 바른정당 이혜훈(경제학) 의원이다. 2010년 출간한 저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호응과 냉소를 모두 얻었던 김난도(법학) 서울대 교수, 2선 의원이던 바른정당 조해진(법학) 전략기획팀장도 빼놓을 수 없는 ‘똥파리’다.
조국(법학)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12일 현재 가장 유명해진 ‘똥파리’다. 서울대 교수였던 조 수석은 문재인 대통령 집권 이틀 만에 ‘검찰 개혁’의 특임을 받고 청와대로 들어갔다.
국민일보 더피플피디아: 서울대 82학번 ‘똥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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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