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아빠다斷想 11> 고마움

입력 2016-07-20 06:00
가정보다 특종을 좇던 기자였습니다. 올해 초 3살 딸아이가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서야 ‘아빠’가 됐습니다. 이후 인영이의 투병 생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소아난치병 환우와 아빠엄마들을 응원합니다.


인영이는 또래보다 말이 조금 느리다. 올해 초 처음 아팠을 때 일주일 내내 고열에 시달리며 축 쳐져 있으면서 스스로 아프다는 표현을 잘 하지 못했다. 이후 병원 생활을 하면서 인영이는 아파, 싫어 이런 말들을 먼저 배웠다. 무균병동에서 자기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이 조잘조잘 말하는걸 보고 ‘쟤는 먼데 말을 저리 잘하지?’란 표정으로 멀뚱히 그 아이를 쳐다보던 인영이를 보고 엄마아빠는 그 상황이 재밌어 웃었지만, 한편으론 서럽기도 했다.
그런 인영이가 지난 5월 만 3살이 되고 나서부터 말이 부쩍 늘었다. 지금은 출근할 때 “아빠, 회사 가지마. 나랑 놀아”라고 떼를 쓰고, 오전에 엄마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서 “아빠, 엄마 아이랑 안 놀아주고 자고 있어”라고 이르기까지 한다.
지난 주말, 인영이가 가장 좋아하는 짜장면을 먹으러 갔다. 아들처럼 든든하다.

인영이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은 “고마워”다. 아빠가 놀아줄게 라고하면 “고마워”, 사과를 손에 쥐어주면 “고마워”, 신발을 신겨줘도 “고마워”, 심지어는 아빠랑 병원 같이 가자해도 그 작은 입술을 움직여 “고마워~”라고 말한다.
그런 인영이에게 정작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아빠엄마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인영이는 전신마취를 몇 번이나 하고, 가슴 정맥관 삽입수술까지 굳건히 받았다. 어른들도 무서워하는 골수검사, 척수주사를 울먹이면서도 잘 참아냈다. 좋아하던 물놀이와, 친구들과 함께 놀던 키즈카페도 갈 수 없지만 때 쓰는 법 없이 집에서 혼자서 잘 논다.
우리집 아이들은 기저귀를 사랑한다. 큰 딸 윤영이는 5살때 유치원에 가면서 기저귀를 차고 갔다. 그런 언니를 따라 인영이도 애기변기에 소변을 봐도 기저귀는 늘 입고 있다.

어느새 인영이가 아픈 지 6개월이 가까워간다. 시간은 흐를수록 인영이의 몸 상태는 좋아지고 있다. 처음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백혈병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밤새 잠못 이루고 동이 터오던 그 새벽이, 무균병동에 아이와 아내를 놔두고 집에 홀로 와서 펑펑 울던 그 밤들이, 잊혀지지는 않지만 먼 일처럼 느껴진다.
그 6개월 새 인영이는 자신이 의사표현을 할 수 있게 됐고, 최근에는 애기변기에 소변을 보기까지 했다. 한사코 팬티를 거부하고 기저귀를 차고 있겠다고 고집을 피우지만 변기에 소변보는 재미에 흠뻑 빠져있다.
한시간도 안돼 자신의 방을 저렇게 만들고 태연히 독서하는 인영양. 인영이는 어지르는데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치우라고하면 "아이 힘들어"라고 한다.

인영이가 아프고 난 뒤 주변 지인들과 선후배들로부터 많은 위로와 도움을 받아 고맙지만 무엇보다 가장 고마운 것은 인영이다.
“인영아, 아빠엄마 곁에 건강히 있어줘서 너무 고마워. 우리 늘 서로 ‘고마워’라고 말하며 완치될때까지 잘 치료받자.” 이렇게 말하면 인영이는 “응 고마워”라고 대답할 것 같다.
세종시에 새로생긴 장난감 백화점. 사람이 적어 마트보다 안심이 돼 인영이를 자주 데리고 간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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