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영이는 또래보다 말이 조금 느리다. 올해 초 처음 아팠을 때 일주일 내내 고열에 시달리며 축 쳐져 있으면서 스스로 아프다는 표현을 잘 하지 못했다. 이후 병원 생활을 하면서 인영이는 아파, 싫어 이런 말들을 먼저 배웠다. 무균병동에서 자기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이 조잘조잘 말하는걸 보고 ‘쟤는 먼데 말을 저리 잘하지?’란 표정으로 멀뚱히 그 아이를 쳐다보던 인영이를 보고 엄마아빠는 그 상황이 재밌어 웃었지만, 한편으론 서럽기도 했다.
그런 인영이가 지난 5월 만 3살이 되고 나서부터 말이 부쩍 늘었다. 지금은 출근할 때 “아빠, 회사 가지마. 나랑 놀아”라고 떼를 쓰고, 오전에 엄마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서 “아빠, 엄마 아이랑 안 놀아주고 자고 있어”라고 이르기까지 한다.
인영이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은 “고마워”다. 아빠가 놀아줄게 라고하면 “고마워”, 사과를 손에 쥐어주면 “고마워”, 신발을 신겨줘도 “고마워”, 심지어는 아빠랑 병원 같이 가자해도 그 작은 입술을 움직여 “고마워~”라고 말한다.
그런 인영이에게 정작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아빠엄마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인영이는 전신마취를 몇 번이나 하고, 가슴 정맥관 삽입수술까지 굳건히 받았다. 어른들도 무서워하는 골수검사, 척수주사를 울먹이면서도 잘 참아냈다. 좋아하던 물놀이와, 친구들과 함께 놀던 키즈카페도 갈 수 없지만 때 쓰는 법 없이 집에서 혼자서 잘 논다.
어느새 인영이가 아픈 지 6개월이 가까워간다. 시간은 흐를수록 인영이의 몸 상태는 좋아지고 있다. 처음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백혈병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밤새 잠못 이루고 동이 터오던 그 새벽이, 무균병동에 아이와 아내를 놔두고 집에 홀로 와서 펑펑 울던 그 밤들이, 잊혀지지는 않지만 먼 일처럼 느껴진다.
그 6개월 새 인영이는 자신이 의사표현을 할 수 있게 됐고, 최근에는 애기변기에 소변을 보기까지 했다. 한사코 팬티를 거부하고 기저귀를 차고 있겠다고 고집을 피우지만 변기에 소변보는 재미에 흠뻑 빠져있다.
인영이가 아프고 난 뒤 주변 지인들과 선후배들로부터 많은 위로와 도움을 받아 고맙지만 무엇보다 가장 고마운 것은 인영이다.
“인영아, 아빠엄마 곁에 건강히 있어줘서 너무 고마워. 우리 늘 서로 ‘고마워’라고 말하며 완치될때까지 잘 치료받자.” 이렇게 말하면 인영이는 “응 고마워”라고 대답할 것 같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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