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76>기자영화

입력 2016-06-27 16:18

‘Bad News Makes Good News’. 기자 시절, 내 책상머리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 밝고 따뜻한 미담 같은 ‘좋은’ 기사를 더 많이 다뤄달라는 빗발치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각종 재난과 사고 등 ‘나쁜’ 기사에 더 중점을 둘 수밖에 없는- 그래야 독자의 관심을 더 끌 수 있으니까- 언론 입장에서 기자의 좌우명이랄 수 있는 말이었다.

이런 과거의 나를 생각나게 하는 영화를 한 편 봤다. 브라이언 디큐벨리스라는 감독이 연출하고 애드리언 브로디가 주연한 ‘맨해턴 나이트(Manhattan Night, 2016)’. 현대판 하드 보일드 필름 누아르로 분류되는 이 영화에서 뉴욕의 신문기자로 나오는 브로디는 주인공의 1인칭 내레이션이 깔리는 대다수 필름 누아르의 전통대로 중얼대는 목소리로 내레이션을 내뱉는데 영화 첫머리에서 대뜸 이런 말을 한다. “나는 폭력, 스캔들, 살인을 판다 … 신문을 판다는 말이다.” “… 나는 신문기자다. 말을 바꾸면 멸절위기종(endangered species)이다. 그럴 만도 한 게 요즘은 수백만명의 아이들이 유튜브 등을 통해 보도와 논평을 하는 세상 아닌가… 전에는 내 글로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했으나 이제는 가족과 함께 먹고사는 걸로 만족한다”.

한때 ‘무관(無冠)의 제왕’으로까지 칭송되던 기자의 위치가 어느새 이렇게까지 떨어졌나싶어 처량하지만 어쩌랴, 세상이 달라진 것을. 그렇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할리우드 영화에서 그려지는 기자는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내세워지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체로 ‘정의의 사도’이자 ‘영웅’이었다. 경찰도 해결하지 못하는 범죄사건을 파헤치고 더 나아가 국제적 스파이전에서도 맹활약하는.

버버리 코트 깃을 세우고 중절모를 눌러쓴 채 ‘문제해결사(problem-shooter)’로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누비는 기자상이 우리들 머리에 새겨진 것도 그 같은 할리우드 영화에 나온 기자의 이미지 덕분이었을 터. 물론 그러한 기자상은 우리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이 맡은 출입처의 기사를 처리하고 데스크 지시사항을 소화하기에만도 바쁜 판에 수사권도 없으면서 미궁에 빠진 범죄사건을 조사한답시고 몇 주일, 몇 달씩 들러붙어 싸돌아다닐 기자가 어디 있으랴. 요즘은 탐사보도라는 문패가 붙은 기사도 가끔씩 보이지만 할리우드식 진정한 의미의 탐사보도기자(investigative reporter)는 언감생심이다.

그러나 ‘맨해턴 나이트’의 브로디는 진정한 탐사보도기자다. 일간지 기자이면서 일주일에 사흘의 마감시간만 지키면 되고 조사하고 싶은 사건은 마음대로 조사한다. 데스크의 지시도 없다. 그래서 그는 자의적 판단에 따라 맹렬한 조사 끝에 경찰도 포기한 유명 영화감독 변사사건을 해결한다. 다만 고인의 미망인과 가지게 된 부적절한 관계 탓에 세상에 진실을 밝히지는 못하지만.

이처럼 민완기자들을 다룬 할리우드 영화는 또 뭐가 있을까. 할리우드 영화와 기자하면 즉각 떠오르는 게 ‘어느날 밤에 생긴 일(1934, 프랭크 캐프라)’의 클라크 게이블과 ‘로마의 휴일(1953, 윌리엄 와일러)’의 그레고리 펙이다. 두 영화 모두 특종에 목마른 기자가 각각 몰래 도망나온 재벌가의 영양(令孃)과 공주를 우연히 만나 특종의 꿈을 좇다 특종 대신 사랑에 빠진다는 얘기. 문제해결사로서의 기자는 아니지만 특종에 목숨을 거는 기자의 속성을 잘 보여준 영화들이다.

그리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진짜 기자들 얘기.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1976, 앨런 J 파큘라)’과 ‘스포트라이트(2015, 톰 맥카시)’. 전자는 너무도 유명한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폭로한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를 다룬 영화였고 후자는 가톨릭 사제들의 성 추문을 파헤친 보스턴 글로브의 탐사보도기자팀을 다룬 영화로 아카데미 작품, 각본상을 받았다.

파큘라 감독은 이밖에도 기자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을 몇 편 만들었다. 정치영화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 ‘패럴렉스 뷰(The Parallex View, 1974)’와 존 그리셤 소설을 원작으로 한 ‘펠리컨 브리프(1993)’다. 워렌 비티가 기자로 나온 패럴렉스 뷰는 기자가 대통령 후보로 나선 상원의원 암살사건을 둘러싸고 비밀 정치조직을 밝혀낸다는 이야기고, 펠리컨 브리프에서는 덴젤 워싱턴이 기자로 나와 연방대법원판사 2명의 암살에 얽힌 음모를 추적한다.

할리우드 기자들의 활약은 국내에서 그치지 않는다. 국제첩보전마저 그들의 영역이다. 앨프리드 히치콕의 ‘해외특파원(Foreign Correspondent, 1940)’. 2차대전 직전을 배경으로 영국에 파견된 미국 기자(조엘 맥크리어)가 독일 스파이들을 찾아낸다는 이야기다. 히치콕의 초기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또 ‘태양의 피(Blood on the Sun, 1945, 프랭크 로이드)’라는 것도 있다. 역시 2차대전 직전을 배경으로 일본에서 일하는 미국인 기자(제임스 캐그니)가 일본의 세계정복 야욕을 밝혀낸다는 이야기.

기자들이 국제첩보전에만 끼어드는 게 아니다. 세계사를 바꾼 현장에서 목숨을 돌보지 않고 기사를 씀으로써 세계사의 흐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워렌 비티가 감독 주연한 ‘빨갱이들(Reds, 1981)’. 소련 현지에 가서 공산혁명을 직접 체험하고 신문기사와 함께 ‘세계를 뒤흔든 열흘’ 같은 책을 써 공산주의가 세상에 알려지고 확산되는데 크게 기여한 급진파 미국 기자 존 리드의 일생과 활동을 그린 전기영화다. 비티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제2차 대전의 와중에 미군 병사들의 전투와 일상사를 가감없이 객관적으로 전달해 미국인들에게 감동을 준 퓰리처상 수상 종군기자 어니 파일(버제스 메레디스)의 종군기를 그려 최고의 전쟁영화 중 하나로 평가받는 ‘지아이 조의 이야기(The Story of G I Joe, 1945)’도 잊을 수 없는 기자영화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기자 영화라면 역시 필름 누아르가 어울린다. 예의 깃 세운 버버리 코트가 바람에 휘날리는 영화들이다. 이런 유의 영화가 얼마나 유행했으면 할리우드에 ‘신문 누아르(newspaper noir)’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터프가이의 대명사 험프리 보가트가 신문기자(사실은 편집장) 역을 맡아 갱단의 범죄를 파헤치는 ‘데드라인 유에스에이(Deadline USA, 1952, 리처드 브룩스)’나 명우 제임스 스튜어트가 시카고의 기자로 나와 옥살이를 하고 있는 살인범의 누명을 벗겨주는 ‘노스사이드 777번으로 전화를(Call Northside 777, 1948, 헨리 해서웨이)’이라든가 역시 살인누명을 쓴 전화교환원의 혐의를 벗겨주는 기자(리처드 콘테)의 활약을 그린 ‘블루 가드니아(Blue Gardenia, 1953, 프리츠 랑)’가 그것들인데 특히 랑은 비슷한 내용의 영화를 몇 편 더 만듦으로써 ‘신문 누아르’라는 말이 형성되는데 기여했다.

물론 할리우드에는 남자만 기자로 활약한 게 아니라 여기자들도 다수 등장했다. 이를테면 ‘커다란 갈색 눈동자(Big Brown Eyes, 1936, 라울 월쉬)’에서는 보석도둑을 쫓는 경찰(케리 그랜트)을 도와 여기자(조운 베넷)가 범인 체포에 공을 세우고, 글렌다 패럴이 여기자 토치 블레인역을 맡아 각종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토치 블레인(Torchy Blaine)’ 시리즈는 1937~39년에 9편이 제작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이밖에 거장 엘리아 카잔이 만들어 아카데미 작품 감독상을 받은 명작 ‘신사협정(Gentlemen’s Agreement, 1947)’에서는 그레고리 펙이 미국사회의 반유대정서와 유대인 차별을 심층취재하기 위해 직접 유대인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현장에서 맨몸으로 부딪히는 살신성인 기자로 나온다. 미스터리를 극적으로 해결하는 등 화려하지는 않아도 기자의 사명과 의식을 잘 드러낸 수작이다.

‘맨해턴 나이트’에서 브로디는 “요즘도 누가 종이신문을 보느냐”는 물음에 “아직 인쇄물에 끌리는 사람들이 있다. 종이를 만지고 잉크 냄새 맡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다”라고 답한다. 정말 그렇다면 종이신문과 신문기자의 미래도 완전히 깜깜하지만은 않은 걸까.

김상온 (프리랜서 영화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