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면 된다'는 얘기 하지 말라... 일본 젊은 사회학자의 비판

입력 2016-03-27 17:13

“하면 된다.” “꿈을 가져라.”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기성세대가 청년들을 격려하면서 가장 흔하게 하는 말들이다. 일본의 젊은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31)가 쓴 책 ‘희망 난민’(민음사)은 이런 덕담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지난 2014년 연말 국내에서 출간돼 주목을 받은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의 저자인 후루이치는 그보다 1년 앞서 완성한 이번 책에서 꿈을 이룰 수 없는 시대에 꿈을 강요당하는 젊은이들의 문제를 ‘희망 난민’으로 정의하면서 “희망만 있는 사회라는 건 사실 매우 살아가기 힘든 사회”라며 “‘하면 된다’ 식의 말은 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는 “사이비 희망이나 격려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며 “오히려 젊은이의 꿈을 단념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희망 난민이란 주제는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일본에선 이미 꿈을 포기하거나 체념한 ‘사토리 세대(달관세대)’가 유행이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N포세대’ ‘흙수저’ 등 잃어버린 꿈에 대한 담론들이 끓어오르는 중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 내각부가 지난 2013년 13∼29세 젊은이를 대상으로 실시한 ‘일본과 여러 외국 젊은이가 지난 의식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젊은이의 42%가 ‘희망이 있다’, 44%가 ‘굳이 말해야 한다면 희망이 있다’라고 대답했다. 반면 일본에서 ‘희망이 있다’라고 대답한 젊은이는 12%에 불과했고, ‘굳이 말해야 한다면 희망이 있다’라고 대답한 젊은이도 49%에 머물렀다.

“한국 젊은이들의 총 86%가 ‘희망이 있다’라고 대답한 것은, 아직 한국이 희망을 ‘필요’로 하는 사회라는 점을 말해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젊은이의 희망을 실현케 하는 환경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일본보다 훨씬 많은 ‘희망 난민’이 생겨나고 말 것이다.”

저자는 “일본의 젊은이들은 이미 단념하였다”고 말한다. 국내 소개된 후루이치의 두 권의 책 ‘희망 난민’과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은 일본 젊은이들의 체념 상태를 상세하게 보여준다.

왜 희망 난민이 늘어나고 있는가? 후루이치는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의 붕괴를 이유로 든다. 메리토크라시란 신분이나 가문이 아니라 능력이 있는 사람이 사회를 지배하는 시스템을 말하는데,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좋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고, 그러면 ‘좋은 인생’을 영위할 수 있다는 믿음이 붕괴됐다는 것이다.

희망이 없는 사회라면 희망을 단념시키는 것이 그나마 청년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은 도발적이다. “희망 난민은 희망을 지닌 채로 그것이 쉬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 찾기를 이어 간다. 그리고 희망이 이루어질 여지가 보이지 않아 생기는 ‘폐색감’으로 고통 받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희망이 없다는 건 정말 불행한 일일까?”라고 질문하면서 “젊은이를 단념시키자”고 거듭해서 주장한다.

이 책은 지금의 청년세대에게 ‘희망 난민’이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붙여준다. 그리고 희망을 갖는 쪽과 포기하는 쪽 가운데 어느 편이 더 행복한 것인지 고민하게 한다. 꿈과 가능성을 체념하고 현실에 안주하며 작은 행복을 찾는 일본의 사토리 세대? 희망의 부재 또는 붕괴를 절망하면서 사회를 향해 분노를 터트리는 한국의 N포세대?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