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닥친 한파에 자동차 긴급출동 요청이 치솟았다. 수퍼엘리뇨 현상으로 올 여름에는 태풍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새해 벽두부터 기상이변이 속출하면서 보험사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재보험사 코리안리는 지난해 역대 최대 당기순이익을 기록했지만 올해 목표치를 낮춰 잡았다. 코리안리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큰 자연재해가 없어 해외에서 예상보다 보험금 지급이 적었지만, 올해는 유럽과 북미에서 이상고온과 사상최악의 한파가 번갈아 나타나고 우리나라 주변에서도 기온 변화가 심해 날씨로 인한 재해 피해가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24일 설명했다.
전국이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진 지난 19일 삼성화재에는 긴급출동을 요청하는 자동차보험 가입자들의 전화가 폭증했다. 이날 하루 접수된 긴급출동 건수만 4만9246건으로 1주일 전 같은 화요일의 1만5160건보다 3배가 훨씬 넘어, 1일 출동건수로는 사상최대를 기록했다. 삼성화재 측은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아 출동한 사례가 75%나 됐는데 대부분 추운 날씨 때문에 배터리가 방전된 경우였다”고 전했다.
그나마 자동차는 의무적으로 보험에 가입해 나은 편이다. 태풍이나 홍수 등이 닥치면 큰 피해가 예상되는 농작물이나 건물, 공장 등은 거의 무방비 상태다. 자연재해나 화재 등 다양한 분야의 재해 방지 활동을 벌이는 삼성화재 GLC센터의 김경희 책임은 “이미 과거의 날씨 데이터가 무의미할 정도로 지구의 기후가 급변하고 있어, 세계적으로 자연재해 예측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기후변화 현상이 점점 뚜렷해지면서 경작지나 시설물에 피해가 우려되지만, 의무적으로 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공공시설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비가 안 돼 있다”고 지적했다. 김 책임은 “지난 133년간 지구 온도가 섭씨 0.85도 올랐는데, 빙하기와 해빙기의 차이가 5~6도에 불과한 것에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라며 “보험도 최후의 수단일 뿐 자연재해에 미리 대비를 해야 하는데 우리는 지진 같은 대규모 재해 경험이 없어 대비도 그만큼 부족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서울시의 경우 건축물의 재해 대비 설계 기준이 2010년 이후 크게 바뀌었지만, 그 전에 지어진 건물들에게는 새로운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 빗물을 모으는 우수로 기준도 강화됐지만 시설 교체는 느릴 수 밖에 없다.
공공시설만이 문제가 아니다. 지하에 위치한 영업점은 거의 무방비다. 김 책임은 “지하에 있는 시설물 중 홍수에 안전하다고 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며 “지하도 입구에 물을 막는 차수판만 설치해도 어느 정도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귀뜸했다.
국내에 날씨와 관련된 보험으로는 우박 집중호우나 겨울철 추운 날씨로 인한 농작물의 피해에 대비한 농작물재해보험, 적조 해일 등의 피해를 보상하는 양식수산물재해보험, 가축재해보험, 주택이나 비닐하우스의 풍수해보험 등이 있다. 국고에서 매년 예산 범위 내에서 보험료를 절반까지 지원하기 때문에 꾸준히 가입자가 늘고 있지만, 농어촌의 가입률은 아직도 낮은 편이고 그나마도 들쭉날쭉이다. NH농협손해보험 관계자는 “농작물 피해가 크게 발생하면 이듬해 가입률이 높아지지만, 무사히 지나가고 나면 보험을 찾는 이들이 뚝 떨어진다”고 말했다.
날씨에 따라 보험금 지급이 늘거나 주는 보험은 농업분야만이 아니다. 현대해상 교통기후환경연구소 기후환경팀 박홍규 팀장은 “올해 엘리뇨가 강했는데 이럴 경우 강수량이 많아져 자동차 사고가 늘어나고 기온이 높아지면서 꽃 피는 시기가 빨라지면 꽃가루 알러지로 인한 실손의료보험금 지출도 늘어난다”고 말했다. 현대해상은 일조량이 부족해 태양광 발전시설의 가동률이 떨어지면 보상해주는 태양광 발전소 보험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박 팀장은 “가장 큰 문제는 기온이 변하는 진폭이 과거보다 2~3배 더 커졌다는 점”이라며 “예측도 어렵고 재해에 대비할 기준을 어느 정도 강화해야하는지 기준을 정하기도 힘들어졌다”고 했다. 2011년 일본 도호쿠 대지진(쓰나미)의 경우 쓰나미로 원자력발전소가 무너지기 불과 3일전에도 큰 지진이 있었지만 아무 사고가 없었는데, 수백년만의 쓰나미가 닥치면서 참사가 빚어졌다.
미국에서는 80년대 이전부터 우박 피해에 대비한 농작물 보험이 나왔고, 가뭄 홍수는 물론 병충해에도 대비하는 전천후 보험이 판매되고 있다. 헐리우드의 영화 촬영이나 영국의 윔블던 테니스 같은 야외 스포츠경기도 날씨에 따른 피해를 줄이기 위해 보험에 가입한다.
보험가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갑작스런 날씨 변화에 대비하는 것이다. 자동차보험사들이 날씨와 도로상황을 알려주는 전광판을 설치하는 것도 비용보다 사고 절감 효과가 더 크기 때문이다. 삼성화재 김 책임은 “기업들이 해외에 진출하는 경우 공장 부지 선정 단계에서부터 보험사와 협의하면서 자연재해에 대비한다”며 “기후가 큰 폭으로 변하고 있는 만큼 그동안 피해가 없었다는 곳일수록 더 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올해 날씨 심상찮다” 보험사들 바짝 긴장
입력 2016-01-24 15: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