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이 9일(현지시간) 공개한 중앙정보국(CIA)의 이슬람 수감자들에 대한 고문 실태는 이 나라가 과연 선진국이고, 민주주의와 인권 옹호를 선도해온 나라인지 의심케 하기에 충분했다. 상상을 뛰어넘는 잔인한 고문 방식을 접하노라면 마치 시계바늘이 중세시대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공포감 및 육체적 고통 극대화=CIA는 ‘선진 심문(enhanced interrogation) 프로그램’이라는 명목으로 고문을 자행했지만, 그런 이름 자체가 무자비한 고문을 숨기기 위한 ‘위장’에 불과했다.
CIA는 공포감을 심어주기 위한 여러 방법들을 동원했다. 특히 눕힌 채 얼굴에 물을 계속 뿌려 익사의 공포를 체험케 하는 물고문인 ‘워터보딩(water boarding)’이 대표적이다. 이로 인해 입과 코에 물이 들어가 숨지기 직전의 상황까지 갔던 이들도 여럿 있었다. 심지어 한 수감자는 183차례나 워터보딩 고문을 당했다. 이후 공포에 질린 포로에게 다른 비밀 수감시설로 옮겨진다고 알린 뒤 ‘더 가혹한 물고문이 기다리고 있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수감자의 눈을 가린 채 ‘러시안 룰렛’(총알을 한 발만 넣고 머리에 총을 쏘는 것)을 하거나, 몸 가까운 곳에서 전동 드릴을 작동시켜 겁을 주기도 했다. 발을 심하게 다친 수감자들에게는 장시간 서 있게 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구타했다.
총상이 미처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조기에 고문을 집행해 상처가 더 악화된 경우도 다반사였다. 통상 고문을 하기 전에 자백 의사를 확인해야 하지만, 고문자들은 다짜고짜 고문에 들어가기도 했다. 한 수감자는 20일 내내 모진 고문을 당했다.
◇정신분열 노린 고문도=정신을 피폐하게 해 진술을 유도하기도 했다. 180시간(7일 12시간)을 잠을 재우지 않거나, 귀청이 터질 정도로 큰 음악을 트는 청각 고문도 자행했다. 보고서는 “고문에 사용된 음악 소리는 영구적으로 청각장애를 일으킬 만큼 큰 소리였다”고 설명했다. 수감자의 머리카락과 턱수염을 포함해 모든 체모를 깎아내고 나서 차가운 방에 집어넣기도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 수감자는 이런 방에 장시간 방치돼 저체온증으로 숨졌다.
또 큰 덩치의 수감자를 가로 80㎝, 세로 90㎝의 좁은 공간에 강제로 들어가게 해 폐쇄공포증을 느끼게 만들거나, 이런 상태에서 벌레까지 집어넣어 겁을 주기도 했다. 관처럼 생긴 상자에 집어넣기도 했다.
◇인간적 모멸감 주입시켜=치부에 자극적인 소스나 많은 양의 물 등 이물질을 집어 넣는 고문도 자주 활용됐다. 빗자루 손잡이 등을 성고문 도구로 쓰겠다고 협박한 일도 있었다. 딱딱한 이물질을 강제로 집어넣는 바람에 수감자들의 신체가 헐어 고생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고문할 때 수감자들의 옷을 다 벗겨 수치심을 유발시키기도 했다. 장시간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고문자들 가운데 수감자를 성폭행한 경우도 있었으며, 이같은 사실이 상부에 보고됐지만 아무런 제재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수감자의 어머니와 관련된 성적 협박을 하거나 아이들에게 해코지를 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말문을 열기 위해 가족과 관련된 언어 고문이 자주 활용됐다”고 서술했다.
미국 매체 허핑턴포스트는 “고문은 하나같이 역겹고 구토가 날 정도의 비인간적인 방식들이었다”고 지적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CIA 고문보고서 후폭풍] 공포심 극대화하고 정신적 고통 및 수치심 유발 ‘잔혹’
입력 2014-12-10 1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