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신 기념사업회’ 28일 출범

입력 2014-11-24 08:52

일제강점기에 함석헌과 함께 ‘성서조선’을 발간하면서 민족주의 사상을 보급한 기독교 사상가 김교신(1901∼1945)의 기념사업이 본격 추진된다.

‘김교신 기념사업 준비위원회’(위원장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는 28일 오후 5시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김교신 기념사업회 창립총회를 연다고 24일 밝혔다.

김교신은 1901년 함경남도 함흥의 엄격한 유교 가문에서 태어났다. 1919년 함흥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고 3·1운동에 참가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기독교에 귀의했다.

복음주의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에게 배우면서 무교회주의 사상을 갖게 됐고, 도쿄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귀국해 서울 양정고보와 제일고보(현 경기고) 등에서 교사 생활을 했다.

귀국 후 우치무라 문하의 함석헌, 송두용, 정상훈, 유석동, 양인성 등과 함께 조선성서연구회를 만들어 무교회주의 운동을 시작했다.

이들이 추구하는 기독교는 교회라는 형식이 아니라 예수와 성서를 기반으로 한 신앙이자, 선교사들의 사상적 지배에서 벗어나 한국인의 얼에 따른 기독교 사상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었다.

1927년부터 ‘성서조선’을 발간했지만 같은 기독교인들과의 갈등, 총독부 검열에 따른 발간 지연 등으로 늘 폐간의 위기에 시달려야 했다. ‘성서조선’은 결국 1942년 3월호(제158호)의 권두문 ‘조와’(弔蛙)로 필화 사건을 겪게돼 폐간당하고 김교신, 함석헌 등은 옥고를 치렀다. 조선총독부는 일본의 억압으로 고통받는 조선을 얼어죽은 개구리에 빗댄 것으로 봤다.

김교신은 출소 뒤 1944년 함흥질소비료공장에 입사해 노무자들에게 민족혼을 불어넣다 이듬해 4월 발진티푸스에 걸린 이를 돌보다 전염돼 목숨을 잃었다.

김교신 기념사업 준비위원회 총무 양현혜 이화여대 교수는 “김교신 선생의 무교회주의는 교회를 반대한 게 아니라 소속 교회, 교파를 넘어 일상에서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증거하는 삶이 중요하다고 봤다”며 “참 교육자이자 신앙인이었던 김교신 선생의 기념사업이, 한국 개신교가 건강한 윤리의식과 역사의식을 찾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재우 선임기자 jw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