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부부생활 파탄 났다면 바람 피워도 손배 책임 없다”

입력 2014-11-20 16:57

배우자가 불륜을 저질렀더라도 사실상 혼인관계가 파탄 난 이후라면 불륜의 상대방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A씨(50)와 아내는 1992년 결혼했지만 이후 경제적인 문제, 성격 차이 등으로 불화를 겪었다. 2004년 2월 A씨가 아내에게 “우리는 더 이상 부부가 아니다”라고 말했고 아내는 그 길로 집을 나가 별거를 시작했다. 2008년 아내가 A씨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해 2010년 대법원에서 이혼 확정 판결이 났다. 그런데 이혼 판결이 확정되기 전인 2009년 1월 아내가 등산모임에서 알게 된 B씨(53)와 사귀며 부정한 관계를 맺었다. 이를 알게 된 A씨는 B씨를 상대로 “이혼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 아내와 불륜을 저질러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며 위자료 3000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20일 A씨가 B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가정법원에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제3자가 부부 중 한쪽과 부정한 행위를 했다면 이는 그 배우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 행위인 것은 맞다”고 밝혔다. 하지만 A씨 부부의 경우 이미 장기간 별거 중일만큼 부부관계가 파탄돼 객관적으로 회복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침해될 부부의 공동생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봤다.

이는 유사 사건에서 불륜 책임을 인정해온 기존 판결을 대법원이 처음 뒤집은 판례다. 이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는 A씨 주장을 받아들여 B씨에게 위자료 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었다.

한편 민일영 김용덕 대법관은 “부부 공동생활의 실체가 사라지고 혼인관계 회복 노력도 하지 않는 경우 배우자의 간통에 묵시적으로 동의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는 보충의견을 냈다. 또 “지금까지 대법원이 취해온 간통 개념을 적절히 보완·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혼인제도의 성 풍속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사생활에 대한 사법적 관여를 줄여 나가야 한다는 취지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