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는 청년 시절에도 같은 방을 썼다. 한 방에서 부대끼며 사는 생활은 불편한 점이 없지 않았으나, 생각을 공유하기에 좋았다. 8년 전 어느 날이었다. 형 김산하씨(38)씨 머리에 아이디어가 퍼뜩 스쳤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행동생태학과 박사과정에서 긴팔원숭이에 대해 연구하며 온통 관심이 동물에 가 있던 때였다.
“스라소니가 토끼를 잡어 먹는 장면에서 ‘스톱’을 시켜보면 어떨까. 한쪽은 잡아먹어야하고, 다른 쪽은 도망가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양쪽의 입장을 보여주는 거지!”
서울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작가생활을 하던 동생 한민(35)씨도 반색했다.
영장류 과학자인 형이 쓰고, 만화가인 동생이 그린 어린이 동물생태만화 ‘STOP!’(비룡소)은 이렇게 탄생했다. 제1권 ’동물들이 함께 사는 법’(공생과 기생)으로 시작됐던 시리즈가 최근 8권 ‘더워지는 지구 지키기’(지구온난화), 9권 ‘세계 환경회의와 동물대표’(환경보호)를 동시에 내는 것으로 8년 만에 완간됐다.
형 산하씨는 17일 국민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글 쓰고 만화 그리는 것만 역할을 분담했을 뿐 핵심 아이디어는 항상 브레인스토밍을 했다”고 말했다. 형이 박사 후 과정으로 긴팔원숭이 연구를 위해 인도네시아 열대우림으로, 동생이 대학원 진학을 위해 포르투갈로 가면서 서로 잠시 떨어져 있을 때는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작업했다.
형제의 만화작업은 구체적인 정보를 통해 환경보호의 절박성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지구온난화를 다룬 8권을 보자. 얼음이 녹으면서 빙산 밑의 바닷물이 민물로 변하고, 그래서 짠 바닷물에 익숙한 생물들이 점점 살기 힘들어진다거나, 빙산 사이 간격이 멀어져 북극곰도 헤엄치다 빠져죽기도 한다는 얘기 등은 온난화의 위험성을 구체적으로 실감하게 한다.
만화의 꼬마 주인공 ‘지니’의 캐릭터도 합작품이다. 지니는 소녀이지만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중성적으로 표현된다. 부모의 국적도 드러내지 않았다. 환경문제는 성별을 떠나, 국적을 떠나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형제는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어릴 때 일본, 스리랑카, 덴마크 등 세계 각국에서 성장했다.
산하씨는 “추운 지방에서 더운 지방까지 다양한 서식지를 체험해봐서 그런지 환경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레 생겨났다”고 말했다.
산하씨는 현재 비정부기구인 생명다양성재단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고, 동생 한민씨는 그래픽 노블 작가로 활동하면서 생태만화 작업도 지속하고 있다.
두 사람은 앞으로 성인을 대상으로, 또 한국의 동물과 식물을 주제로 생태 만화작업을 할 계획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형은 쓰고, 동생은 그리고… 환경만화 ‘스톱’ 완간한 형제 이야기
입력 2014-11-17 1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