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일까 연극일까. ‘일반인들의 생활극’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왔다. 15~16일 나루아트센터에서 연극 ‘크리스마스 패션쇼’의 막이 올랐다.
“크리스마스가 뭐야?” 우리가 누리지 못했던 판타지
‘크리스마스 패션쇼’의 주인공은 전문 배우가 아니다. 강영은·유영미 아나운서, 곽영미 플로리스트, 이명순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이애리 중부대 교수, 이정순 주얼리 디자이너, 전주혜 변호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20년 이상 경력을 쌓아온 전문직 여성들이 모였다. 극단 물결 대표인 송현옥 세종대 교수가 연출을 맡았다.
송 교수는 여자로서, 엄마로서, 직장인으로서 살아오며 겪은 이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극 속에 담았다. 크리스마스조차 모르고 살아온 배우들은 이명순 디자이너의 데뷔 25주년을 맞아 패션쇼 무대에 서기로 마음먹는다. 앞만 보고 달려온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모델 워킹은 물론 연기 연습까지 도전하는 이들의 고군분투가 코믹하게 그려지고 그 속에서 저마다의 인생 스토리가 펼쳐진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진솔한 이야기… 연극으로 전해볼까
일반인들을 무대에 올리는 건 출연진에게도, 연출가에게도 모험이었다. 각자 살아온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데에만 3개월이 걸렸다. 송 교수는 “생활체육이 체육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발전에 기여하듯이 우리나라 문화 발전을 위해 생활연극을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일반인으로 연극을 할 거란 생각은 못 했다. 의도한 건 전혀 아니었다”고 말했다.
7명의 배우와 송 교수는 전문직 여성의 모임에서 10년 넘게 인연을 맺어온 친구들이다. 자신의 길을 걸어올 후배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중 ‘연극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송 교수는 “일하는 우리 세대 여자들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아픔이 있다. 후배들은 선배들의 길을 보고 배우는 게 있을 거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진솔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관객들에게도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 한다”고 털어놨다.
연극의 콘셉트는 삶과 판타지다. 송 교수는 “우리이야기를 하자는 원칙만 세워놓고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눴는데 답이 안나왔다. 그러다가 이명순 선생님의 패션쇼가 있다는 말을 듣고 연극에 넣어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명순 디자이너는 연극을 위해 별도로 준비하던 25주년 행사를 취소했다. 연극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패션쇼에선 7명의 주인공 외에 또 다른 15명의 ‘워킹맘’들이 무대에 선다.
송 교수는 “크리스마스에는 판타지가 있다. 판타지는 기존의 삶을 전제로 만들어진다. 일만 하느라 판타지를 갖기 못한 여성들에게 패션쇼만큼 더 큰 판타지는 없다”고 말했다.
“자신을 광대로 만들어 준 배우들에게 고마워”
송 교수는 “우리 나이가 되면 직급이 높아지고 부하직원도 많아진다. 연극은 자신의 맨 얼굴을 드러내는 거다. 친구들이 처음부터 자신을 내보일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의식을 버리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자신을 왕자나 공주로 만드는 건 쉽지만 광대로 만드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신을 열어줬다는 게 배우들에게 가장 고맙다”고 전했다.
7명의 배우들은 각자의 일상을 마치고 난 뒤 저녁부터 연습을 시작했다. 바쁜 일상을 쪼개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배우들은 입을 모아 ‘힐링이 된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직장, 가족, 집안 문제 등으로 너무나 바쁜 와중에도 이번 기회에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는 게 너무 좋다. 우리는 연극을 하는 거지만 본인들 스스로 힐링이 되더라. 그 사실이 기뻤다”고 말했다.
‘크리스마스 패션쇼’는 16일 마지막 공연을 갖는다. 송 교수는 “처음엔 이틀을 채울 수 있을까 싶었다. 지금은 대극장을 대관하지 않은 게 후회스럽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극단 물결은 항상 새로운 걸 추구한다. 이번에는 일반인과 패션쇼를 결합했다. 다큐 연극을 만드는 건 평범한 거 같지만 평범하지 않은 실험”이라고 밝혔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일하는 여성의 삶 그리고 판타지… 연극 ‘크리스마스 패션쇼’
입력 2014-11-16 18:30 수정 2014-11-16 1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