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세월호 정국’의 터널을 지나온 정치권이 이제 ‘예산전쟁’을 시작했다.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까지 마친 여야는 곧바로 376조원에 달하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심사를 개시했다. 2012년 개정된 국회법에 따라 올해부터는 예산안 심사를 11월 30일까지 마치지 못하면 다음날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다. 남은 기간 여야의 예산확보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정무위원회 등 5개 상임위원회는 30일 전체회의를 열어 소관 기관의 내년도 예산안을 심의했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도 공청회를 개최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재정지출을 늘려서라도 경제를 살리는 게 시급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때문에 ‘확장 예산’편성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맞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서민증세를 막고 ‘박근혜표 예산’을 반드시 걸러내겠다고 벼르고 있다. 특히 담뱃세를 비롯한 주민세, 자동차세 증세에 집중적으로 제동을 걸 것으로 예상된다.
공청회에서도 여야 추천 전문가들의 예산안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우선 야당 측은 재정건전성 악화가 국가적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유찬 홍익대 세무대학원 교수는 “정부는 국가채무가 외국과 비교했을 때 안정적인 수준이라 보지만 숨겨진 공기업 부채를 감안하면 불안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2007년만 해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규모가 36.3%로 현재 우리나라와 비슷했다가 5년 만에 92.2%로 급증한 스페인의 예를 들었다. 그러면서 “재정적자가 통제 가능한 수준에서 아주 순식간에 통제 불가능한 수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는 내년도 관리재정수지를 33조6000억원 적자를 예상하고 있다”면서 “이명박정부 때부터 2015년까지 7년 내내 재정적자인 셈”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재정지출 확대가 내수 활성화, 세수증대의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 중기 재정건전성엔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내다봤다. 또 정부의 경제 활성화 대책을 제외하면 경기회복의 모멘텀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확장 예산 편성은 불가피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확장적 예산기조는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세계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2016년 이후 경기회복이 가시화되면 재정건전성을 위한 지출 축소, 세입 확대의 예산이 편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이제는 예산전쟁이다
입력 2014-10-30 1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