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핵 폭격기를 포함한 20여대의 전투기를 동원해 전통의 라이벌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유럽 영공 인근에서 군사훈련을 펼쳤다. 냉전 이후 좀처럼 발생하지 않던 대규모 ‘신경전’에 서방 언론들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주목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6대의 핵 폭격기와 십 수대의 전투기 등 러시아 공군이 28~29일(현지시간) 사이 24시간 동안 유럽 영공 접경지역을 비행해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벌였다고 30일 보도했다. 러시아 전투기들이 대규모로 출현하자 덴마크, 독일, 노르웨이 등 나토 소속 8개 회원국과 리투아니아에 있는 나토 공군기지에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전투기들이 긴급 발진하는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28일 오전 3시쯤 북해 인근에 4대의 Tu-95 장거리 전략 핵 폭격기와 4대의 공중급유기 등 8대의 러시아 비행기들이 출현하면서 상황이 전개됐다. 노르웨이 공군이 긴급 발진하자 6대는 돌아갔으나 2대의 핵 폭격기는 계속 남진해 북해를 지나 영국 영공 쪽으로 접근했다. 영국 공군 소속 타이푼 전투기들이 발진했고 러시아 핵 폭격기들이 계속 남진해 이베리아 반도 쪽으로 이동하자 이번에는 포르투갈 전투기들도 가세했다.
같은 시간 나토의 발트해 전담 초계비행단 소속 전투기들은 2대의 미그-31 폭스하운드 전투기와 2대의 수호이-34 풀백스 전폭기를 포함한 7대의 러시아 전투기를 막기 위해 긴급 출동했다. 이와 동시에 터키도 흑해를 건너 자국 영공으로 접근하는 4대의 러시아 전폭기와 전투기를 감시하기 위해 전투기를 출격시켰다.
앞서 지난 주말에는 러시아 공군 소속 정찰기가 냉전시절 이후 처음으로 나토 영공을 침범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나토 관리들은 이번 일련의 신경전을 지난 10여년 간 러시아가 나토를 상대로 벌인 영토 도발 중 가장 심각한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해 나토가 발트해 국가에 배치하는 전투기를 4대에서 16대로 늘리는 등 대응전력을 강화했지만 러시아의 도발은 계속되고 있다.
나토는 성명을 통해 “이처럼 상당한 규모의 러시아 전투기가 출현한 것은 유럽 영공에서 행해진 공군 활동으로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러시아 핵폭격기, NATO 유럽 영공 인근서 군사훈련
입력 2014-10-3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