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빅뱅이론 긍정하지만 하느님 개입 부정은 아냐… 하느님은 마법사가 아니다”

입력 2014-10-29 15:58
AFPBBNews=News1

“하느님은 마법사가 아니다. 하지만 진화론과 창조론 역시 모순되지 않는다.”

진보적 행보로 주목받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과학과 신앙의 관계에 대한 소신 발언을 이어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8일(현지시간) 바티칸에서 열린 교황청 과학원 회의에서 진화론과 빅뱅이론 등 현대과학의 성과를 긍정하면서도 이것이 가톨릭의 가르침과 충돌하거나 하느님의 개입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창세기를 읽다보면 하느님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지팡이를 가진 마법사로 여겨질 위험이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면서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했고 인간이 각자에 주어진 법칙에 따라 성장해 사명을 완수하도록 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세상의 기원으로 받아들이는 빅뱅이론 역시 신성한 창조자인 하느님의 개입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진화와 창조라는 두 가치의 양립을 부정하는 무신론을 반박했다. 진화 역시 진화할 존재를 만들어낼 창조주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가톨릭은 과거 천동설을 부인했다는 이유로 파문됐던 과학자 갈릴레이 갈릴레오를 복권시키고 진화론을 타당한 과학적 접근으로 인정하는 등 현대과학과 신학의 양립을 꾸준히 추구해왔다. 교황의 이번 언급 역시 기존 가톨릭의 입장과 크게 다르진 않지만 상대적으로 보수적 성향이었던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에 비해 한층 진전된 입장으로 평가된다. 베네딕토 교황은 진화론과 창조론 간 토론을 “어리석은 짓”으로 평가하며 “기독교인들은 우주가 우연히 만들어졌다는 사고를 거부해야 한다. 창조 자체를 거부하고 진화론만을 지지하는 사람은 신을 떠나면 될 일”이라는 강경 입장을 고수했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같은 날 열린 세계민중운동회의에서 빈자의 권리와 실업의 부당성 등에 대해 역설한 뒤 “이런 얘기를 하면 누군가는 교황이 공산주의자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가난한 자에 대한 사랑이 복음의 핵심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난한 자를 위한 가난한 교회’를 설파하고 과도한 자본주의를 비판해 온 교황이 평소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비판하는 보수주의자들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