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정치참여 어떻게 이뤄졌나… NCCK '정치윤리와 한국교회의 과제' 강연

입력 2014-10-27 16:28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교육훈련원은 27일 서울 중구 장충단로 경동교회에서 ‘정치윤리와 한국교회의 과제’를 주제로 강연회를 열었다. 강사로 나선 이해동(행동하는 양심 이사장) 목사는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진실 정의 사랑 평화로 정치의 속살을 채워 넣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연은 ‘에큐메니컬 신학대학원 연합 공동수업’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이 목사는 개신교가 100여년 전부터 한국 근현대 정치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고 설명했다. 이 목사는 “교회 공동체가 일제 식민 통치에 거세게 저항했다”며 “특히 3·1운동은 준비 단계에서부터 진행과정에 있어서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민족대표 33인을 봐도 개신교 대표가 16명으로 과반수에 이르렀고 3·1운동이 민중 운동으로 퍼지는데도 선도적 역할을 했다”며 “3·1독립선언서 역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약한 자의 해방’이라는 복음의 정의와 자유정신에 일치 한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해방 직후부터 15년 동안은 한국교회가 특권을 누리며 비판 기능을 상실했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통령을 비롯해 핵심적 정부각료와 요인들 중 기독교인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정부와 권력에 대한 무조건적 옹호와 지지를 보내왔다”며 “이 같은 현상은 1960년 4·19학생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지속됐다”고 설명했다.

이 목사는 “그나마 4·19학생혁명 이후 장공 김재중 목사를 중심으로 교계 지도자들 사이에 깊은 뉘우침이 일어났다”며 “이후에도 소수이기는 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폭압정치에 대해 끊임없는 저항과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과 1976년 3·1민주구국선언을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그는 “민청학련 사건 이후 매주 목요일마다 기도회가 열렸고 천주교의 정의구현 사제단과 함께 하는 유신독재 반대 운동의 출발이 됐다”며 “3·1민주구국선언도 관련 피고인 18명 중 목사가 6명, 장로가 2명일 정도로 개신교가 주축이 돼 민주화와 사회정의를 위해 움직였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최근 논란이 되는 교회의 정치 참여에 대해서는 ‘신앙의 정치화’와 ‘정치의 신앙화’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신앙이 정치의 시녀가 되고 도구가 돼 정치권력에 아부하고 결탁하는 것이 신앙의 정치화”라며 “반면 신앙적 가치인 정의 사랑 평화를 정치의 속살로 채워 넣는 정치의 신앙화”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교회는 만신창이가 된 오늘의 정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진실과 정의를 위해 십자가 고난의 행진을 이어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