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알프스 배낭여행기] ‘제2의 인터라켄’ 한국에 불가능하지 않다

입력 2014-08-15 16:44
융프라우로 가는 길목 인터라켄 이젤트발트 마을 풍경. 쿤호수 옆 산골마을으로 인터라켄이 확대되고 있다.

‘유럽의 지붕’ 융프라우는 한국인들의 관광명소

‘유럽의 지붕’ 스위스 융프라우는 한국인들이 유럽 관광명소중 한 곳이다. 융프라우는 전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1년 내내 붐빈다. 융프라우는 등반, 여행과 함께 유럽의 예술과 문학이 스며있다.

한국에는 ‘처녀봉’으로 알려진 융프라우(Jungfraujoch)는 독일어 ‘젊은 처녀’(Jungfrau)와 ‘산등성이’(Joch)를 합쳐 ‘처녀봉’이란 뜻을 갖고 있다. 보통 융프라우라고 부른다.

해발 4158m 정상에는 만년설과 함께 이탈리아 국경 쪽 펼쳐진 광활한 협곡은 알프스 산맥에서 최고 장관을 연출한다. 한여름에도 눈보라가 몰아치는 이곳은 한국 단체관광객들이 단골로 방문하다 보니 전망대에서 아예 컵라면도 판다. ‘유럽의 지붕’ 대형간판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스탬프로 융프라우 방문을 인증하는 증명서도 만들 수 있다.

뉴욕 파리 못지 않은 스위스 명소 인터라켄

융프라우로 가는 출발지는 인터라켄(Interlaken)이다. 툰호수(Thun Lake)가 감싸고 도는 인터라켄은 오스트역(intrlaken ost)과 서역(interlaken west) 사이 전형적인 스위스 산골마을이다. 하지만 등산전문가와 트래킹족은 물론 배낭여행, 신혼여행, 가족여행 등 갖가지 형태의 외국관광객들이 쉴새없이 인터라켄을 찾아온다.

스위스의 수도 베른이나 최고 관광지 루체른에서 기차로 2시간여 걸려 도착하는 인터라켄역은 의외로 작다. 철로 옆 몇m 옆에는 버스들이 오간다. 이곳을 찾는 외국 관광객 대부분은 융프라우 외에 쉴트호른(Schilthorn)으로 가는 여행자들이다. 이곳이 아니면 인터라켄 주변 산골마을에서 휴식들을 취한다. 대표적으로 인터라켄에서 버스로 30여분 외길을 들어가면 이젤트발트(Iseltwalt)라는 툰호수를 낀 작은 마을이 나온다. 유스호스텔은 물론 민박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유스호스텔은 1박에 50~70 스위스 프랑(한화 6만5천~9만원, 1일 기준)으로 매우 저렴하다. 유럽은 물론 미주, 최근에는 중국인과 한국인들이 찾아가는 아름다운 호반의 전원마을이다. 인터라켄은 이렇게 툰호수를 따라 주변 작은 마을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지난 7월 25일 오후 5시(현지시간) 인터라켄 오스트역은 정말 붐볐다. 태국의 방콕을 인종전시장이라고 한다지만 여기도 매한가지였다. 각국의 관광객들이 저마다 언어로 숙소를 찾고 기차편을 알아보고 저녁 찬거리를 사느라 여기저기 북새통이었다.

인터라켄은 인종전시장 전세계 관광객 넘쳐

버스에서 만난 미국 배낭여대생들의 활달한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한달 넘게 유럽여행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자기 키만큼이나 큰 대형배낭을, 하나도 모자라 앞뒤로 2개나 맨 티셔츠 차림의 20대 전후 여학생이 안쓰럽기는커녕 미국인들의 실용주의와 모험주의 단서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패션쇼라도 하듯 화려하게 차려입고 줄달린 선글래스에다 명품핸드백을 들고 인터라켄을 찾아오는 일부 한국 젊은 여성들과는 참 대조적이었다.

인터라켄 오스트 역 건너편 쿱(coop)은 규모가 매우 큰 대형마트였다. 우리나라의 홈플러스같은 마켓으로 스위스 전역에 있다. 이곳에는 한마디로 없는 게 없다. 값도 무척 쌌다. 스위스는 물론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등 각국에서 들어온 값싼 과일과 채소 등 농산물, 식음료, 주류, 소시지와 햄이 쌓여있었다. 저렴한 가격의 와인은 4~7 프랑(한화 4천~7천원)에 살 수 있다. 살인적인 스위스 고물가에 고생한 일을 생각하니 ‘거저’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바게트와 소시지, 피자, 과일 등을 50프랑 어치만 사면 4인 가족이 하루 이틀은 충분할 듯 싶었다.

판매시스템도 참 편리했다. 과일이나 채소를 집어들어 계량저울에 올려놓고 진열대 위 지정번호를 누르면 자동으로 최종가격이 인쇄된 가격표가 나온다. 이것을 비닐봉투에 붙여 갖고 계산대로 가면 ‘끝’이다. 그래서 관광객들로 그렇게 붐벼도 말이 필요없어 계산대는 밀리지도 않았다.

오스트역에서 서역까지 걸어서 20여분이면 돌아볼 수 있는 인터라켄은 작은 마을이지만 세계에는 파리나 뉴욕 못지 않게 알려진 관광명소 중의 하나다. 이 작은 마을이 하루에 벌어들이는 돈이 얼마일까. 호기심 많은 한국인 습성이 밴 탓인지 의문은 가지만 계산조차 하기 힘들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융프라우로 가는 길목이 관광명소로 입지 넓혀

스위스 작은 산골마을 인터라켄이 유럽관광명소로 부상한 이유는 무엇일까. 단연코 융프라우다. 융프라우는 지구상 그 어디서도 보기 힘든 광활한 천혜의 자연유산이다. 그만큼 ‘유럽의 지붕’ 내지 ‘유럽의 진주’란 애칭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돌아보니 스위스를 갈 때마다 융프라우를 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인터라켄이 먼저 떠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한국관광에 대한 안타까움일 것이다.

융프라우도 한때 멀리서 바라만 봐야하는 그런 설산(雪山)이었다. 그런데 지난 1896년부터 1912년까지 16년간 융프라우까지 암반터널을 굴착하고 여기에 기차철로를 깔았다. 전문등산가 아니면 밟아보지도 못했을 융프라우 전망대는 누구나 반나절이면 다녀올 수 있는 유럽 최고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융프라우 관광전망대는 여름에도 눈이 휘날리는 영하의 겨울 날씨를 보인다. 섭씨 30도가 넘는 초여름 날씨인데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가니 영하의 겨울이라는게 여간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알프스 산맥이란 자연을 밑천으로 스위스 사람들은 막대한 관광수입을 얻는다. 융프라우로 가는 산악지형에 철로를 내고 암반을 뚫어 터널을 만든다는 계획 자체가 자연파괴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더구나 30~40도의 급경사를 올라갈 때 미끄러지지 않게 가운데 기차아래 가운데에다 톱니바퀴까지 달아 부드럽게 융프라우를 오를 수 있게 만들었다.

인터라켄에서 융프라우 뿐 아니라 쉴트호른 정상까지 갈 수 있다. 쉴트호론은 한국인들에게 융프라우만큼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유럽인들에게는 알프스 명소중의 하나다. 정상까지 케이블카를 설치해 누구나 편안하게 알프스 절경을 즐기며 올라가는 이곳에는 색다른 대중문화의 스토리텔링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난 1968년 개봉된 <영화 007 시리즈>의 ‘여왕폐하 대작전’(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 촬영지다.

‘007 영화 촬영지 쉴트호른, 문화스토리가 경쟁력 실감

‘007 제임스본드가 여기서 이렇게 혈투를 벌였지. 그 영화에 나오는 식당 이 자리에서 촬영했다네’. 외국관광객들은 아이거와 융프라우 정상 등 알프스 절경을 즐기면서 문화적 스토리로서 ‘007 영화’를 떠올리며 추억을 되새긴다.

여행 내내 천혜의 자연유산을 물려받은 스위스는 참으로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한국을 되돌아보니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우리도 스위스 못지 않은 자연유산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설악산과 한라산, 한려수도 역시 스위스 관광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라켄이나 루체른 호수 역시 ‘호반의 도시’ 춘천을 연상케 한다는 한국인 관광객들도 적지 않았다.

우리는 왜 스위스가 되지 못하는 것일까. 자연환경을 조금도 훼손해서는 안될 스위스가 왜 100년 전에 그 험준한 알프스산에 철도를 깔고 터널을 뚫어 융프라우 정상 바로 아래 전망대를 설치했을까. 그렇다고 자연을 훼손했다고 비난하는 스위스 국민들은 없다.

인터라켄에서 산악열차를 타고가던 중 여러 상념들이 떠올랐다. 한라산 정상은 등산객들로 완전히 망가져 수년째 서북면은 진입통제하고 휴식중이다. 백록담으로 가려면 대부분 영실 코스가 아닌 성판악 왕복 9시간 코스로 간다. 그러다 보니 등산로 주변 암석은 발길에 닳고 닳아 이젠 무너져 파괴되고 있다. 입산을 금하고 차라리 스위스 처럼 케이블카나 산악열차를 설치하면 차라리 이런 자연훼손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라산 설악산 한려수도, 국제경쟁력 가진 한국의 ‘제2의 인터라켄’

설악산도 마찬가지다. ‘백년만의 폭설’이 내렸던 지난 2월 중순 설악동에서 케이블카로 권금성을 올라간 적이 있다. 칼바람에 눈발이 날리는 악천후였으나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은 겨울 풍경에 탄성을 자아냈다.

최근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전망대와 호텔 등 편의시설을 조성하는 이른바 ‘친환경 케이블카 확충’과 ‘산지관광 활성화’ 정책이 발표되자 반대움직임이 거세게 일고 있다.

자연환경은 최대한 보호하고 완벽하게 보전해 후손에 물려주어야 한다. 나아가 정부의 졸속사업도 마땅히 경계돼야만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무조건 ‘자연훼손은 안된다’는 명분으로 반대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인터라켄은 나에겐 아이패드의 ‘지도’위의 작은 점으로 찍혀 있다. 머리에는 인터라켄을 오가던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행렬, 대형매장 ‘쿱’이 눈에 선하다. 마냥 스위스를 부러워만 할 게 아니라 우리도 이제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제2의 인터라켄’이다.

비록 한반도의 절반이긴 하지만 우리가 가진 남한의 천혜 자연환경은 유럽인들조차 부러워 할만한 자연문화자산이다. 이제는 이마저도 이념적 정쟁의 도구로 하면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기 짝이 없다.

지난 1993년 황산성 환경부 장관 재임 당시 초대 출입기자로 환경보호정책을 절대 지지했던 필자로서 지금 ‘제2의 인터라켄’을 이야기하면 욕먹을 일인지도 모르겠다. 행여나 당시 필자가 쓴 기사 때문에 개발사업을 포기했던 총리실과 건설교통부 고위공무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생각도 든다.

낙동강 페놀사건이 터지던 20년 전의 일이다. 어느 정도 환경정책은 성공했다고 볼수 있다. 이제 글로벌시대다. 4대강사업 같이 거창한 정치적 국책사업이 아니라면 케이블카와 산악열차를 놓아 국제적 관광지로 만드는 최소한의 관광문화정책은 필요하지 않을까.

관광은 미래의 강력한 먹거리다. 이제 최소한의 관광편의시설을 갖추고 문화적 스토리를 담아야한다. ‘소녀시대’나 싸이의 ‘강남스타일’로 문화스토리를 관광에 접목시키자. 설악동이나 성판악, 여수에 언젠가 전세계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몰려오는 ‘제2의 인터라켄’이 조성될 수 있지 않을까. 한국판 ‘제2의 인터라켄’ 결코 어렵지는 않다.

스위스(인터라켄)=김경호 방송문화비평가 kyungho@kmib.co.kr blog.daum.net/alps1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