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는 어디로 갔나?

입력 2014-06-03 15:27

10대 재벌 계열사간 ‘일감 몰아주기’ 154조원, 역대 최대

박근혜 정부에서 경제민주화가 후퇴했음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3일 공개됐다.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 경제민주화가 주요 이슈로 부각되고 ‘갑의 횡포’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면서 다소 주춤하던 일감 몰아주기가 지난해 다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재벌닷컴이 지난해 국내 자산 상위 10대 재벌그룹의 내부거래액을 집계한 결과, 10대 그룹의 내부거래액은 154조 2022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내부거래액이 가장 많은 그룹은 SK그룹으로 40조 5421억원이나 됐다. 1년새 15%포인트가 증가했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이 SK인천석유화학과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로 분할된 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LG그룹의 계열사 내부거래액도 1년 전보다 7.5% 증가해 16조 4471억원이었다. 포스코그룹의 내부거래액은 15조 5542억원, 롯데그룹은 8조 9193억원, 한진그룹은 1조 548억원으로 조사됐다.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한화 등 5개 기업은 2012년보다 내부거래액이 줄긴 했지만 감소폭은 미미했다. 삼성그룹은 1년 전보다 5.0% 감소했으나 26조 7422억원으로 다른 기업에 비해 여전히 높았다. 현대차그룹도 34조4038억원으로, 전년 대비 1.73% 감소하는데 그쳤다.

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규제 구멍 숭숭…기업들, 법망 모두 빠져나가

기업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올해 49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중 총수가 있는 37개 그룹 계열사 1171개의 일감 몰아주기 현황을 분석한 결과 9%에 해당하는 105개사가 공정거래위원회의 감시 대상으로 조사됐다. 전년 대비 117개에서 12개가 줄어든 수치다.

공정위는 자산총액 5조원 이상 대기업 그룹 중 대주주 일가 지분이 상장 30%(비상장 20%)를 초과하는 계열사의 내부거래 금액이 200억원, 또는 연간 매출의 12%이상일 경우 이를 규제한다. 지난해보다 감시 대상 숫자는 줄었지만 이는 규제가 효과를 거뒀다기 보다 오히려 대기업그룹이 대주주 일가의 지분을 줄이거나 사업 조정 등의 방법으로 규제 대상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지난 2월 발효되면서 규제가 강해지자 이를 빠져나가기 위해 기업들이 저마다 방법을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계열사가 가장 많이 줄어든 곳은 GS그룹이다. 기존 13개에서 지난해 승산레저와 에스티에스로지스틱스를 합병하는 등의 방법으로 3개나 줄였다. SK그룹도 규제 대상 기업을 4개에서 2개로 줄였다.

삼성의 경우 대주주일가 지분율과 내부거래 비율 45% 이상이던 삼성 SNS가 삼성 SDS에 합병되면서 규제 계열사 1개가 감소했다. 삼성 에버랜드의 경우 제일모직으로부터 1조원대 규모의 패션사업을 넘겨받는 등 사업부문을 조정했으나 이에 따른 실적이 공시에 반영되지 않아 규제망을 벗어날 수 있었다. 현대백화점도 규제대상이던 현대그린푸드의 대주주 일가 지분율은 30.5%에서 29.9%로 낮추는 방법으로 규제를 피했다.

현대자동차는 현대엠코가 현대엔지니어링에 합병되면서 규제기업이 1곳 줄어든 9개가 됐고, CJ는 규제 대상 기업이 2개 늘어나 6개를 기록했다. 또 한국타이어와 효성은 규제 대상 회사가 각각 5개였다. 롯데, 신세계, 현대중공업, 금호아시아나 등은 일감몰이 규제에 해당되는 계열사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