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시늉 뿐인 요양병원 안전관리가 화 불렀다

입력 2014-05-29 03:41

또 어이없는 참사다. 이번에는 요양병원 어르신들이 희생됐다. 28일 새벽 전남 장성의 보건복지부 지정 전문요양병원에 입원한 어르신들은 깊은 잠에 빠져 불이 난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시커먼 연기를 무방비로 마셔야 했다. 효실천사랑나눔요양병원 별관 건물 2층에서 이 병원에 입원한 80대 치매환자의 방화로 추정되는 이날 화재로 고령 환자 20명과 간호조무사 1명이 숨지고 여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기 고양시외버스종합터미널 화재로 수십명이 숨지거나 다친 게 엊그제인데 또 다시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중증 치매·중풍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병상에 누운 채 그것도 새벽에 제때 대피하지 못하고 화마(火魔)에 희생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로, ‘효실천사랑나눔’이라는 병원 이름이 무색할 따름이다. 이 요양병원은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의 지시에 따라 지난 9일 자체 안전점검을 한 뒤 21일 장성군의 안전점검도 받았지만 모두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이 건물에는 스프링클러도 없었고 환자 대피 등도 엉망이었다.

급속한 고령화로 요양시설들이 5년 새 2배로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안전관리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오히려 뒷전으로 밀리는 실정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 국민일보는 2주 전 노인요양시설 안전 관리 문제점을 집중 지적했다. 당시 한 요양시설 관계자는 “불이 나는 게 가장 큰 문제인데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어떻게 대피시킬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요양시설 화재 사고는 이번만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2010년 11월 10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친 경북 포항의 노인요양원 화재다. 포항 화재 이후 노인요양시설에 대한 제도적 안전장치가 강화됐다고는 하지만 사고는 4년 만에 재현됐다. ‘소 잃고 외양간도 제대로 못 고친’ 한국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해 전국 3664개 장기요양기관의 안전관리 실태를 평가한 결과에서도 3곳 중 1곳의 재난 상황 대응 수준이 ‘보통 이하’였다.

요양병원 참사 발생 10여 시간 후에는 2003년 대구지하철 방화 공포를 연상케 하는 아찔한 사고도 서울지하철 3호선에서 일어났다. 승객들의 침착한 대피로 인명피해가 단 한 명도 없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정부는 최근 한 달간 재난 위험이 있는 시설물 4000여곳에 대해 안전점검을 실시했다고 밝혔으나 인재(人災) 사고는 하루가 멀다 하고 끊이지 않고 있다. 엄청난 재난을 당하고도 우리 사회가 아직도 안전 불감증의 적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된다. 세월호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 다시 생각해볼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