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잃은 나무토막 하나님의 마리오네뜨 되다

입력 2014-05-24 02:05


마리오네트 전문극단 ‘보물’ 김종구 대표

제페토 할아버지가 없었다면 피노키오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나무로 피노키오를 만들고 피노키오가 살아 숨쉬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이 없다면 인간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생명을 위해 항상 간구하신다.(롬 8:27) 마리오네트(marionette)는 줄을 매달아 움직이는 인형이다. 성경을 극화할 때 만든 막달라 마리아 인형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김종구(58) 마리오네트 전문극단 ‘보물’ 대표는 하나님을 전하기 위해 나무토막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제페토를 닮았다. 작업실 겸 자택이 있는 충북 충주를 지난 16일 찾았다. 대문 앞 우체통에는 5㎝ 미니 피노키오가 앉아 우리를 맞았다. 연필을 귀에 꼽고 작업용 데님 앞치마를 두른 김 대표가 활짝 웃으며 나왔다. “새를 깎고 있었어요.” 동화 ‘피노키오’에서 막 튀어나온 제페토 할아버지 같았다

소돔과 고모라의 냄새가 났다

그가 안내한 작업실 천장과 벽에는 목각인형 10여점과 공구 50여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피노키오 드로잉도 있었다. 손재주 많던 김 대표는 젊은 시절 부산에서 실내장식을 했다. “1980년대 실내장식을 하는 곳은 거의 술집뿐이었어요. 일꾼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나이트클럽 조명도 달고 룸살롱 벽 장식을 했어요. 일하는 곳이 술집이니까 항상 술을 마셨어요. 일을 따내려면 또 술집 사장들과 어울려야 했고…. 좋다고 매달리는 여자도 많았고, 바람도 제법 피웠죠.”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져 살았다. 친한 친구가 교회에 나가라고 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하며 주먹을 흔들어 보였다. “하나님을 믿을 바에는 이 주먹을 믿겠다.”

어느 날 아내 송옥연(56)씨가 “쌀이 떨어졌다”고 했다. 놀랐다. 목돈을 자주 갖다줬기 때문에 풍족한 줄로만 알았다. 아내는 당시 이혼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방탕한 남편의 생활과 생활고를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다. 아들은 벌써 네 살이었다.

“아내가 ‘밀알 한 알’이란 설교 말씀을 어디에선가 듣고 같이 성경을 공부하자고 했죠. 마지막 부탁처럼. 마침 저희 집 바로 옆건물 2층에 조그마한 교회가 생겼어요. 거길 나갔어요.”

박원호 목사가 개척한 하단제일침례교회였다. 김 대표는 박 목사와 성경 공부를 시작했다.

“성경 공부를 하면서 저도 모르게 정직하고 깨끗한 삶을 사모하게 됐어요. 그날도 술집 인테리어 공사를 다 끝내고 개업 전야 술판을 벌이고 있었어요. 일꾼들이 아가씨들을 끼고 술 마시며 웃고 떠들었죠. 아, 정말 역한 거예요. 소돔과 고모라의 냄새라고 해야 할까요?”

그는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당장 다른 일거리를 찾았다. 동네 주변을 돌다 보니 주택가 차고가 눈에 들어왔다. 거기서 호떡 장사를 시작했다. 간판은 없었다. 대신 입구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라는 성경 구절을 썼다. 강력한 믿음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했다.

“믿음은 사람의 힘으로 생기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혜, 복인 것 같아요.”

아내가 식사 준비를 마쳤다고 했다. 작업실에서 집 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비빔국수와 부추전이 식탁에 놓여 있었다. “직접 농사지은 상추와 부추 넣었어요.” 국수는 매콤달콤했고 전은 고소했다.

붕어빵 구우며 방방곡곡 선교공연

김 대표는 주일학교 강습회에서 인형극을 처음 만났다. “그걸 보자마자 내가 해야 할 거다 싶었어요.” 94년 부산에 있던 선교인형극단 ‘보리떡과 물고기’에 들어갔다. 김 대표가 모든 인형을 직접 제작했다. 단장이 극단을 떠나면서 극단 운영을 맡게 됐다. 매일 매일 ‘부자와 나사로’ 등을 무료 공연하러 다녔다.

“무료로 하다 보니 운영비가 늘 부족했죠. 낮에는 공연을 하고 밤에는 돈을 벌었어요. 노점상을 하고 붕어빵을 굽고, 군고구마도 팔았어요. 보육원이나 지체장애인 보호시설을 많이 다녔어요. 인형극을 보여주고 붕어빵을 구워줬어요.”

아내는 “남편이 붕어빵을 구워줬는데 스물네 살 된 한 지적장애인 청년은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다’며 좋아했어요. 시설에 있다 보니 그런 걸 본 적이 없었던 거예요”라고 했다.

김 대표는 다치기도 많이 했다. 공연 후 군고구마 장사에 나선 어스름 저녁이었다. 버너를 켜자 가스가 ‘뻥’ 터졌다. 전신 화상을 입었다. 의사는 실명할 것이라고 했다.

“제가 붕대를 감은 채 병상에 누워서 소리쳤어요. ‘거기 있는 사람들 죽기 전에 예수 믿으시오. 구원 받지 못하면 지옥 갑니다’라고. 저는 지금 눈 잃어도, 죽어도 구원 받아 천국 가는데 그 사람들이 구원 못 받은 게 불쌍해서 못 견디겠더라고요. 마침 병실에 들어오던 집사람은 ‘밤낮 예수 예수 하다가 이 사람이 드디어 미쳤구나’라고 생각했답니다.”(웃음)

부산에서 살다 어떻게 충주까지 오게 됐는지 물었다. 아내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휴, 말도 마세요. 다혈질에 얼마나 성질 급한지 하나님 믿는 것도 성격 따라 가나봐요. 한번은 목회자가 설교하는데 헌금을 강조하니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예수 하나로 부족합니까’라고 소리친 적도 있어요. 그러곤 짐 쌌죠. 저희 남편이 성경 공부 해야 한다, 이 교회 떠나야 한다고 성화해서 여기저기 정말 많이 떠돌았어요.”

부산, 거제, 양산, 경기도 광주와 이천 곳곳을 이사 다녔다. 극단을 운영하는 동안 집 경남 양산에서 비닐하우스로 가건물을 짓고 마리오네트를 제작했다. 제대로 마리오네트를 배우고 싶었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이 대표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연극대학에 유학을 가기로 했다. 당시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3학년이었던 아들은 아르바이트로 번 돈 100만원을 보탰다. 2000년 러시아에 갔지만 말도 잘 통하지 않고 답답했다.

“제작 실기 중심으로 수강했어요. 도시락 2개 싸들고 아침 일찍 학교 가서 문 닫는 늦은 밤까지 매일매일 두드리고 부수며 마리오네트를 만들었어요. 처음엔 웬 머리 희끗한 동양인이냐는 눈빛으로 보던 노 교수님이 나중엔 1대 1로 수업을 해주셨어요.”

러시아 유학 후 양산 비닐하우스에서 뚝딱뚝딱 인형을 만들었다.

“주로 은행나무를 사용해 만들어요. 대개 3개월 이상 걸려요. 머리 팔 다리 허리 관절마다 줄 6∼20개씩 답니다. 6개월 걸리는 것도 있어요. 옷은 아내가 주로 만들고요.”

“하나님이 제 손에 인형을…”

귀국 후 첫 무대는 2005년 춘천국제인형극제였다. 보리떡과 물고기의 준말 ‘보물’이란 이름으로 공연했다. 서울 대학로극장 공연 후 앙코르 요청이 계속 들어왔다. 정통 마리오네트 제작자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한 예술대학 강단에 교수로 서게 됐다.

“이름은 예술대학인데 미학강의 하나 없었어요. 예술에 철학이 없으면 기술에 불과하죠. 5학기째 중간에 강의를 그만뒀어요. 사실 예술가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 주신 달란트에 노력을 더하면 예술가가 돼요. 재능이 없는데 예술을 전공하면 기술자가 돼요. 피아노 기술자, 그림 기술자…. 하나님은 온갖 고통으로 저를 단련시킨 뒤 마리오네트를 손에 쥐게 해주셨죠. 장돌뱅이로 시장을 돌던 제가 대학 강단에 섰죠. 하나님 은혜예요.”(미소)

아내, 아들 해일(31), 며느리 이슬기(28)씨와 함께 무대에 선다. 가족 극단이다. 앞으로 경남 밀양 숲 속에 인형극 전용 극장을 만드는 꿈을 갖고 있다. 평범한 사람이 보기에 평생 인형으로 복음을 전한 ‘하나님의 마리오네티스트’인데도 그는 근심했다.

“요즘 제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것 같아 걱정입니다.(한숨) 예전엔 비닐하우스에서 라면 1개로 끼니 때울 때는 영적으로 충만했는데 지금은 제 배가 불러 은혜를 잘 모르게 된 것 같아요. 보화가 묻힌 땅이라면 무엇을 팔아서라도 그 땅을 사라고 하잖아요.(마 13:44) 우리가 진정 예수를 믿으면 가난해져야겠지요.”

그는 매년 여름 보름가량 인도에 가 30회 이상 선교 인형극을 한다.

“30분정도 여러 목각인형이 노래를 부르며 콘서트를 해요. 전 마지막 2분을 통해 복음을 전해요. 제가 조종하던 마리오네트를 바닥에 툭 던져요. ‘제가 직접 만들고 조종한 마리오네트입니다. 즐겁게 춤추고 노래하다가 제 손을 떠나니 그냥 나무토막이 돼 버렸지요.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면 이 인형처럼 생명 없는 나무토막이 됩니다. 하나님을 믿으세요’. 오지에 사는 그 인도인들은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듣는 복음일거예요.”

이렇게 하나님 마음을 닮은 ‘제페토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극단 ‘보물’은 24∼25일 오후 1·3시 경기도 군포시예술문화회관에서 ‘제페토 할아버지의 꿈’을 공연한다. 피노키오의 모험을 각색한 공연이다. 24일 오후 6시 30분 서울 마포구 필름포름에서는 제11회 국제사랑영화제 부대행사로 목각인형 콘서트를 할 예정이다.

충주=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