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 하위 20% 중 21만명 2013년 병원·약국에 안 갔다

입력 2014-05-22 02:26


남편과 함께 작은 공장을 운영하는 채모(46)씨는 1년반 동안 병원을 한 번도 안 갔다. 2012년 11월 각막을 다쳐 안과에 간 게 마지막이었다. 의사는 5만원짜리 치료용 렌즈를 1년 동안 20번 정도 껴야 한다고 했다. 채씨는 치료를 포기했다. 건조한 날은 눈을 못 뜰 정도지만 그저 참고만 있다. 채씨는 “공장 월세 내고 애들 참고서 값 주는 것도 벅찬데 병원은 언감생심”이라고 말했다.

저소득층일수록 병원에 안 가고 상급종합병원은 덜 이용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21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13년 보험료부담 대비 급여비 현황 분석’에 따르면 보험료를 적게 내는 하위 20%의 지역가입자 가운데 15.3%(21만2000명)는 병원이나 약국을 전혀 이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세자영업자 중에는 채씨처럼 아파도 진료비 부담에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풀이된다.

조사대상자 3743만6000명 중 의료기관을 이용하지 않은 비율은 7.6%다. 월평균 건강보험료가 1만562원인 지역가입자 하위 20%는 전체 평균보다 배 이상 높게 나온 것이다. 지역가입자 상위 20%(보험료 20만9806원)는 7.6%, 직장가입자 상위 20%(보험료 21만8440원)는 5.2%만 의료기관을 찾지 않았다.

의료기관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아프지 않거나, 의료비 걱정에 치료를 아예 포기하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의 경우에는 치료를 포기하는 사례가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건강세상네트워크 박용덕 정책위원은 “저소득층일수록 작업환경이 나쁘고 술, 담배에 노출되는 일이 많기 때문에 더 건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소득에 따른 의료 이용 양극화 문제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건강보험료를 많이 내는 상위 20%는 병원비가 더 비싼 상급종합병원 이용률도 높았다. 지역가입자 상위 20%는 상급종합병원에서 연간 22만9710원, 직장가입자 상위 20%는 20만3156만원이 건강보험에서 지급됐다. 반면 지역가입자 하위 20%는 14만429원, 직장가입자 하위 20%(보험료 3만569원)는 12만7546원이었다. 보험료 하위 20%의 상급종합병원 이용 수준은 상위 20%의 절반 정도에 그친 셈이다.

박 정책위원은 “돈이 없어서 의료기관을 찾지 못해 병을 키우는 일이 없으려면 의료서비스의 공적인 영역이 넓어져야 한다”며 “공공의료기관을 확충하고 실효성 있는 공공의료정책으로 건강의 안전망이 담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