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녀’, ‘운영체제’ 와 인간의 사랑으로 현대인의 외로움·단절 그려
입력 2014-05-22 02:22
다른 사람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남자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사진). 아내(루니 마라)와 이혼하기로 결심하고 우울해하던 그는 인공 지능 컴퓨터 프로그램을 구매해 소소한 삶의 얘기를 주고받게 된다. 테오도르에게 말을 거는 컴퓨터 프로그램은 보이지는 않지만, 이어폰 안에 살며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그녀’의 이름은 사만다다.
그녀는 목소리로 존재하며 언제나 테오도르와 함께 있다. 이메일이 오는 즉시 제목과 내용을 읊어주고, 책 한 권을 0.02초 만에 읽고 요약해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녀는 테오도르의 모든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위로한다.
“이 감정이 진짜일까. 프로그래밍 된 걸까.”
테오도르와 사랑에 빠진 사만다는 이같이 말한다. 사만다는 손바닥만한 거울 안에 박힌 카메라로 세상을 본다. 테오도르는 귀에 쏙 박히는 작은 이어폰만으로 그녀와 소통한다. 둘은 여느 연인처럼 매일 일상을 나누고 함께 산책하고 사랑도 나눈다. 함께 작사·작곡한 노래를 부르며 그 순간을 각자의 기억 속에 담는다. 이들은 이 노래를 ‘사진’이라 부른다.
‘존 말코비치 되기’(1999) ‘괴물들이 사는 나라’(2009) 등을 만든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최신작 ‘그녀’는 화사한 색감으로 펼쳐지는 세련된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한 남성의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달래주는 ‘마지막 사랑’의 대상이 인공 지능 프로그램이라는 신선한 설정이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영화 후반부엔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회가 드러난다. 이들의 시선을 따라간 관객은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테오도르처럼 컴퓨터와 대화하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은 채 실체를 알 수 없는 또 다른 ‘사만다’와 웃고 떠드는 장면을 마주한다. 그럼에도 ‘만인의 연인’ 사만다에게 테오도르가 확인하고 싶은 것은 단 한가지다. “네가 나만 사랑하면 좋겠다.”
대상이 컴퓨터 프로그램이라는 것만 빼면 평범한 멜로영화라 부를 수 있겠다. 하지만 감독은 영화 전반을 통해 현대인의 외로움과 단절을 표현한다. 소유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 사랑을 갈구하는 인간의 욕망도 영화에 겹쳐진다.
영화는 2014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차지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호아킨 피닉스는 기계와 사랑에 빠진 혼란스러운 감정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며 극 전체를 이끈다. 사만다 역을 맡은 배우 스칼릿 조핸슨은 목소리 연기만으로 로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제작 초기 이 역할에 배우 사만다 모튼이 활약했다가 감독이 생각했던 ‘그녀’와 차이가 있어 조핸슨으로 교체됐다. 모튼이 영화에는 나오지 못했음에도 자신의 이름 ‘사만다’로 흔적을 남긴 것도 흥미롭다. 22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김미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