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탐사기획 이번에는 제대로(1)] 지역 대형사업까지 침몰시킨 ‘검은 共生’

입력 2014-05-19 03:59 수정 2014-05-19 15:36


(1)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지방자치

풀뿌리 민주주의를 꽃 피우라고 뽑았더니 직위를 악용해 검은돈을 받아 챙긴 사례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국민일보가 2010년 제5회 지방선거 당선자들의 피선거권 상실 사례 56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뇌물수수 혐의가 20건에 이르는 것으로 18일 드러났다.

◇지역 업체와 검은 공생=경기도에서 강원도 동해시 북평산업단지 내로 본사와 공장을 이전한 자동차 부품 제조 업체가 있었다. 이 업체 대표 문모씨는 제4회 지방선거가 있던 2006년 동해시장 당선이 유력한 후보자에게 5000만원을 건넸다. 후보자는 당선돼 동해시장으로 취임했다.

4년 뒤 제5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문씨는 김학기 동해시장 후보에게 추가로 1000만원을 쥐어줬다. 김 시장이 재임하던 때 이 업체는 사업 이전 및 부지 매각 과정에서 각종 편의를 제공받은 것은 물론 기업 이전비 명목으로 100억원에 이르는 국고보조금을 지급받았다. 2012년 김 시장은 수뢰 및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대법원은 지난해 8월 김 시장이 2010년 받은 1000만원을 뇌물로 보고 징역 1년6개월에 벌금 3000만원, 추징금 1000만원을 선고한 항소심을 확정했다. 다만 2006년의 5000만원에 대해선 공소시효 만료를 이유로 무죄 판단했다. 김 시장의 형 김인기 전 시장도 민선 1·2기를 거치면서 뇌물수수 사건으로 중도에 낙마했다. 형 사건으로 선거 때부터 동해시민들 사이에 불안감이 퍼져 있었지만 김 시장은 당선됐다. 결과적으로 시민들의 선택은 잘못됐던 셈이다.

◇광역의원 비리가 지역 대형 사업 좌초에 영향=충남도가 설립한 지방공기업인 충남개발공사 이사를 겸임하고 있던 충남도의회 이은태 의원에게 2008년 한 ‘거물’ 정치인의 동생이 찾아왔다. 충남개발공사가 추진하는 천안 아파트 시공 사업과 관련해 특정 업체의 편의를 봐달라는 청탁 때문이었다. 3000만원이 이 의원 처조카 명의 계좌로 송금됐다.

이 의원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3선에 성공하며 승승장구하는 듯했다. 하지만 끝내 법망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2012년 재판에 넘겨진 이 의원은 “1992년 빌려준 돈을 변제받은 것”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년 전 당시 차용증이나 송금 내역 자료가 없다”며 이 의원의 주장을 일축하고 징역 3년에 추징금 3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의원뿐만 아니라 사건에 연루된 충남도청 공무원, 부동산 중개업자 등이 줄줄이 구속되면서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충남개발공사는 비리로 얼룩진 아파트 사업에 대해 중단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미 각종 비용으로 1700억원의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상태였다.

◇‘벼룩의 간’ 빼먹은 시의원=강원도 속초시의회 김강수 의원은 2010년 주민지원협의체 위원장을 겸임하고 있었다. 이 협의체에서 일하던 한 기간제 근로자가 김 의원을 찾아왔다. 채용기간이 만료됐으니 재계약이 성사될 수 있게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김 의원은 “도움을 주겠다”면서 기간제 근로자로부터 300만원을 받아 챙겼다. 배임수재 혐의로 기소된 김 의원은 재판 과정에서 혐의를 인정했다.

◇시 예산으로 조성한 사업비를 친인척의 부지 매입에 쓰라고 압력=2011년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에 광역 쓰레기소각장이 들어섰다. 이에 은현면에는 기피시설 설립에 따른 보상 차원에서 주민지원사업비가 지급됐다. 사업비는 60억원으로, 빠듯한 양주시 예산에서 어렵게 마련됐다. 그런데 그 가운데 절반이 넘는 32억5000만원이 단 한 사람의 ‘입김’으로 특정 건물·부지 매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양주시의회 남선우 의원은 주민지원사업비 일부가 자신의 친인척 등 지인들 건물·부지 매입에 투입되도록 은현면 주민협의체를 압박했다. 남 의원은 소개비 명목으로 5000만원의 뇌물을 받고 한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매입 정보를 넘겼다가 덜미를 잡혔다. 남 의원은 지난해 4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6개월과 벌금·추징금 각각 5000만원을 선고받고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

탐사취재팀=하윤해 팀장, 엄기영 임성수 권지혜 유성열 유동근 정건희 김동우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