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평양서 23층 아파트 붕괴… 수백명 사상

입력 2014-05-19 03:53

북한 평양의 고층 아파트 공사장에서 대형 붕괴 사고가 발생해 수백명의 인명 피해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고위 간부들을 사고 현장에 보내 피해 주민들에게 직접 사과하도록 했고, 북한 매체들도 이례적으로 사고 소식을 공개했다. 해당 아파트에는 내각과 당의 고위 간부 가족들이 입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3일 평양시 평천구역의 건설장에서는 주민들이 쓰고 살게 될 살림집(주택) 시공을 되는 대로 하고 그에 대한 감독통제를 바로 하지 않은 일꾼들의 무책임한 처사로 엄중한 사고가 발생하여 인명 피해가 났다”고 18일 보도했다. 통신은 사고 발생 경위와 인명 피해 규모 등은 밝히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평양시 평천구역 안산1동의 23층 아파트가 붕괴됐다”며 “이 아파트에 92가구가 살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붕괴로 상당한 인원이 사망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정부 소식통도 “아파트 거주 인원 300~400명 가운데 상당수가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에서는 아파트 등 건물 완공 전에 일부 입주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완공 전에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이 주민들에게 공개 사과를 한 것은 처음이다. 김수길 평양시당위원회 책임비서는 “원수님(김 제1비서)이 너무도 가슴이 아프시어 밤을 지새우셨다”며 김 제1비서가 고위 간부들에게 만사를 제쳐놓고 현장에 나가 구조작업을 지휘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사고 지역인 평천구역은 중구역, 보통강구역과 함께 평양의 3대 중심지로 북한 체제를 떠받치는 핵심 계층이 많이 사는 곳이다. 다른 정부 관계자는 “평양 중심지의 신축 중인 고층 아파트인 만큼 당과 내각의 고위 간부들이 많이 입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부일 인민보안부장(경찰청장), 선우형철 인민내무군 장령(장성) 등 간부들이 지난 17일 사고 현장에서 유가족과 평천구역 주민들을 만나 사과한 것이나 국가 차원의 비상대책기구를 꾸린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사과 수위도 매우 높다. 최 부장은 피해 가족들에게 “이 죄는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으며 용서받을 수 없다”고 반성했다. 주민 불만과 불안감을 잠재우려는 의도도 있다.

자신들을 ‘지상낙원’으로 선전하면서 사건·사고 공개를 꺼리는 북한이 대형 사고를 공개한 것은 2004년 평북 용천역 폭발 사고 이후 처음이다. 당시 소학교(초등학교) 학생들을 포함한 160여명이 사망했다.

북한은 2009년부터 ‘평양 10만호 살림집’ 건설사업을 시작하는 등 평양 현대화사업을 진행 중이다. 과거엔 ‘14분마다 1가구를 건설한다’는 이른바 ‘평양속도’를 구호로 주택 건설에 나섰고, 현재도 각종 건설장에서 완공을 빨리 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

일각에선 북한이 세월호 참사를 염두에 두고 사과 소식을 전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우리 정부를 무책임하다며 연일 비난하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대형 참사를 가볍게 넘어가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얘기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