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리스크 겪는 대기업 “시스템으로 위기 극복”

입력 2014-05-19 03:00

오너가 기업 경영의 전반을 총괄하는 재벌그룹의 구조에서 총수 부재는 치명적이다. 이 때문에 재벌그룹은 컨트롤타워를 만들고,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자율경영 체제를 구축해 위기에 대비하기도 한다. 미래전략실을 축으로 각 계열사가 자율경영을 하는 삼성그룹이 대표적이다.

최근 건강문제뿐만 아니라 사법처리 등으로 총수의 경영공백이 발생한 그룹들이 제각각 비상경영체제를 갖추고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SK그룹은 수펙스추구협의회, 한화그룹은 비상경영위원회, 효성은 사업부별 책임경영체제 등을 가동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이 횡령 등 혐의로 16개월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SK그룹은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중심으로 한 ‘따로 또 같이 3.0’ 체제가 안정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수퍼 엑설런트’(Super Excellent)의 합성어인 수펙스는 목표치를 최대한 높게 설정할 때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가설을 핵심으로 하는 SK의 경영기법이다.

수펙스추구협의회는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 C&C 등 주요 계열사 사장단 모임이다. 산하에 전략·글로벌성장·커뮤니케이션·윤리경영·인재육성·동반성장 등 6개 위원회를 둔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재계 관계자는 18일 “지난해 1월부터 SK그룹이 3.0 체제를 도입했고, 같은 달 31일에 최 회장이 구속됐는데 오랫동안 운영했던 전문경영인 체제가 위기 상황에서 진가를 발휘해 큰 혼란을 피했다”고 평가했다.

한화그룹은 비상경영위원회가 김승연 회장의 공백을 메우고 있다. 김 회장은 지난 2월 파기환송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신병 치료차 미국으로 떠났다가 이달 2일 귀국했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 자택에 머물면서 치료에 집중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비상경영위가 대규모 투자, 신규 사업계획 수립, 임원인사 등 주요 결정을 도맡고 있다. 각 계열사 CEO는 계열사별 주요 현안을 챙긴다. 최근 한화L&C는 건자재 사업부문 매각 추진을 발표했고, 한화케미칼은 글로벌주식예탁증서(GDR)를 발행해 3억4000만 달러(약 3500억원)를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

CJ그룹은 이재현 회장이 구속된 지난해 7월 그룹경영위원회를 발족했다. 그룹경영위에는 손경식 회장, 이미경 부회장, 이채욱 CJ㈜ 사장, 김철하 CJ제일제당 사장 등 4명이 참여하고 있다. 매월 2차례 이상 회의를 갖는다. CJ그룹은 계열사 사장단들이 매월 1차례 모이는 CEO경영회의 외에 계열사 전략기획책임자 30여명으로 구성된 협의체도 만들었다. 이 회장의 빈자리를 사실상 전문경영인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 CJ그룹은 공격적 사업 확장보다는 안정성 강화, 수익성 위주 경영에 집중할 계획이다.

효성은 조석래 회장이 79세로 고령인 데다 최근 지병인 심장 부정맥 증상이 심해지고, 전립선암까지 발견돼 비상 상태다. 조 회장은 8900억원대 분식회계를 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앞두고 있다. 이에 따라 효성은 지난달부터 그룹 전체가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했다. 특히 사업부별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해 충격을 줄이는 데 치중하고 있다. 그룹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해외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현장 경영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전 임원의 출근 시간을 오전 7시30분으로 앞당기고, 비용 10% 절감과 매출 10% 확대를 목표로 하는 ‘미니맥스10’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