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도로에도 세월호 있다… 한푼이라도 더 “설마 운전경력 몇년인데”
입력 2014-05-15 03:01
지난 2일 오전 1시쯤 서울 동부간선도로 중랑교에서 보수공사를 위해 다리 밑부분에 덧대 놓은 길이 3m 철골 2개가 약 4m 아래 도로로 추락했다. 화물을 너무 높게 쌓아올린 화물차가 그 밑을 지나다 건드린 것이다. 철골이 달리는 차량들 위로 떨어졌다면 또 한 번 대형사고가 발생할 뻔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이 화물차의 과적 여부를 조사 중이다.
국내 고속도로를 달리는 화물차 10대 중 1대는 과적 차량으로 조사됐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불감증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지만 고속도로에서는 여전히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화물을 싣고 곡예운전을 하는 화물차를 쉽게 볼 수 있다.
과적 화물차 문제는 수십년 된 골칫거리지만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화물차 운전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과적을 한다. 기형적인 화물업계 구조를 완전히 뜯어고치지 않는 한 언제든지 육지에서도 세월호 참사 같은 사고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위험천만 과적 화물차=화물차의 과적운행 현황은 집계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다. 다만 한국도로교통연구원이 2011년 9∼10월 두 달간 자동중량계산 장치인 고속축중기를 이용해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나들목∼김천분기점 구간에서 화물차의 중량을 점검한 결과가 있다. 당시 이 구간을 지난 화물차 32만8719대 중 3만6159대(11%)가 고발 기준을 초과한 과적 상태였다. 2012년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이 같은 방식으로 한국도로교통연구원에 의뢰해 전수조사했을 때도 비슷한 수치(11.3%)가 나왔다. 2006년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이 화물차 기사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선 응답자의 74.7%가 “과적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처럼 과적 운행이 만연하다 보니 2007∼2012년 화물차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하루 3명꼴인 연평균 1269명이나 됐다. 2010년의 경우 전체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자(389명) 가운데 38%(148명)가 과적 및 적재불량 화물차에 의한 사고로 숨졌다.
달리던 화물차가 회전하다 갑작스레 중심을 잃고 전복되거나 급브레이크를 밟고도 수백m를 질주하다 앞차를 들이받는 경우가 대표적인 과적 사고다. 25t 화물차가 시속 100㎞로 달리다 갑자기 정지할 때 적재화물이 40t이라면 제동거리가 84m에 불과하지만 52t일 경우엔 112.5m가 된다. ‘달리는 시한폭탄’인 셈이다.
과적 화물차는 사회적 손실 비용 증가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10t을 실은 화물차 한 대는 승용차 7만대만큼 도로를 파손한다. 높이 규정을 지키지 않아 교량을 망가뜨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2012년 한국도로공사는 과적 화물차로 인한 사회적 손실 비용이 연간 30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운전자들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어”=사회진보연대에 따르면 25t 화물차 운전자가 한 달에 314시간을 일해 900만원 수입을 냈을 때 받는 평균 월급은 고작 69만원이다. 경유비 488만원, 통행료 70만원, 알선료 81만원, 지입료 20만원 등을 빼고 남은 것으로, 시급으로 환산하면 2197원에 불과하다. 최저임금(5210원)의 절반도 안 된다.
현재 화물업계는 운송회사, 화물차 소유주, 알선업체, 운송노동자로 이어지는 다단계식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많은 운송노동자들이 화물 확보를 위해 운송회사와 위·수탁 계약을 맺는다. 물건을 한 번에 많이 싣고 달릴수록 운송회사엔 이득이다. 화물 기사가 운송회사의 요구에 저항할 경우 계약해지 통보를 받을 수도 있다. 자기 소유의 차량이 아닌 경우 화물차 소유주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고, 알선회사 눈치도 봐야 한다. 화물차 기사들이 목숨을 담보로 과적 운행에 나서는 이유다. 실제로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설문조사 결과 전체의 53.5%가 과적 운행의 이유로 ‘차량 소유주의 강요’를 꼽았다.
적발 기준도 법마다 제각각인데다 애매하다. 현행법상 과적 화물차는 도로법과 도로교통법으로 나뉘어 관리되는데, 도로법에서는 화물차 종류와 관계없이 특정 기준 이상의 축하중(10t)과 총중량(40t)을 단속하고 도로교통법은 화물차 종류에 따른 적재중량을 관리한다.
적재중량 점검도 관할 지방경찰청과 국토교통부의 인력·장비만으론 무리라는 목소리가 높다. 축하중과 총중량 초과 차량이라도 잡기 위해 일부 도로에 고속축중기를 설치했지만 이를 피하기 위한 불법 개조도 버젓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설사 단속에 걸리더라도 벌금은 온전히 화물차 기사의 몫이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