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기선완] 재난사고 심리 지원 시급하다
입력 2014-05-15 02:25
“세월호 관련자들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심각… 지속적인 사후관리 절실”
아직도 실종자 수색과 사고 수습 과정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상황이지만, 생존자들과 유가족들 그리고 이 참담한 사고와 관련된 모든 분들의 사후 정신건강을 걱정하고 돌봐야 하는 시기이다. 세월호 비극의 특징은 구조 과정에서 단 한명의 생존자도 구하지 못했고 실종자 수색 과정이 지금도 마무리되지 못하고 장기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번 사고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규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유족을 비롯한 사고와 관련된 분들의 마음에 한을 남기고 억울한 마음을 다시 한 번 갖게 해서는 결코 안 된다. 물론 이번 일을 계기로 안전과 생명존중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도 있어야 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두 번 다치게 할 수는 없다.
재난을 경험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복이 된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도 사고를 겪은 초기에는 불안과 악몽 같은 정신과적 증상과 정상적인 애도 반응을 경험한다. 증상이 1개월 후에도 지속되고 증상으로 심한 고통을 받으며 대인관계 유지나 시회생활을 하기에 지장이 있을 정도가 되면 비로소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분들은 깜짝깜짝 놀라고 공포와 불안을 느끼며 사고의 순간을 재경험하거나, 악몽을 꾸고 수면장애가 발생하며 무기력함과 죄책감에 시달린다. 병의 경과가 악화되고 만성화되면 심한 우울증, 알코올중독, 자살사고가 동반된다. 무엇보다 이런 상태로 진행되지 않도록 초기에 잘 대응해서 악화를 막고 회복하도록 도와야 한다. 사고 발생 후 약 6개월까지 기간에는 생존자와 유족을 포함한 위험 인구집단에 대한 심리적 지원 서비스가 실시돼야 한다.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이므로 불안과 공포를 경험할 수밖에 없음을 설명하고 과도한 죄책감과 후회를 갖지 않도록 유도해야 한다. 또 중요한 결정은 안정된 후로 미루고 사고와 관련된 불필요한 자극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명상이나 종교가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개별 치료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관된 행정조직체계에서 따뜻하고 전문적인 돌봄이 지속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회복을 위한 향후 2년 이상의 지속적인 심리적 지원과 사후 관리가 필요하다.
이번 사건은 한 학교에서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한 만큼 전체 학교 단위의 회복을 위한 특별한 대응이 필요하다. 사고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전달, 정상적인 애도 반응 돕기, 그리고 사전에 위험 인자를 인지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정신건강교육, 집단치료, 개인면담 등의 여러 심리·사회적 서비스도 제공해야 한다. 교사와 학교의 다른 학생들, 학부모 모두를 대상으로 고려하되 이들을 단지 서비스 제공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학교 전체를 같이 협심해 되돌리려는 동반자들로서 보고 큰 시련을 겪었으되 이를 발판으로 희망으로 나아가려는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지역사회 단위의 치료적 접근도 필요하다. 지역사회 전체를 유기적인 공동체로, 회복을 향한 치료공동체로 여겨야 한다. 아울러 모든 시민들을 소중한 인적 자원으로 생각하고, 이번 사고를 계기로 더욱 더 성숙하게 만드는데 주력해야 한다. 생존자와 유가족 그리고 시민들 모두 자존감과 개인의 가치를 발견하고 타인과의 관계 능력을 증진시킬 수 있도록 역동적인 도시 환경을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이번에는 과거에 비해 정신건강을 위한 심리지원이 초기에 신속하게 제공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그동안 여러 정신건강 관련 전문가들이 지역사회 정신보건 사업을 꾸준히 해 온 결과에 따른 인프라와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이 글을 빌려 사고 초기부터 수고하신 정신건강 관련 전문가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우리가 상처와 절망에서 회복과 희망이라는 긍정적인 쪽으로 떨쳐 일어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한국 시민사회의 저력을 믿고 싶다.
기선완 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