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5월 15일] 천사 같은 얼굴

입력 2014-05-15 02:15


찬송 : ‘뜻 없이 무릎 꿇는’ 460장(통 515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사도행전 6장 8~15절


말씀 : 성령의 충만함으로 태동된 교회는 사람들을 변화시키기 시작했고, 능력이 나타났으며, 마침내 넘기 어려운 소유의 벽까지도 뛰어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교회를 불편해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교회가 자신들의 종교적 전통에 도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논쟁을 벌여 보았지만 성령의 충만함으로 말하는 지혜와 언변을 이겨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매수와 충동, 거짓증인을 선택했습니다.

너와 나 사이에 선을 긋고 서로를 죽도록 미워하게 만드는 편 가르기에는 이상한 힘이 있습니다. 상대방을 덮어놓고 미워하는 일에 하나가 되게 합니다. 상대방을 무너뜨릴 수만 있다면 어떤 짓도 서슴없이 행하게 합니다.

자유민들은 로마에 노예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로마 압제의 희생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경험이 묘하게 종교적인 상황과 결합되자 그들은 배타적인 유대인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종교적 재판을 통해 어떻게든 교회를 없애버리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재판에 ‘거짓증인’을 세우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도, 쌍방간의 이야기를 듣고, 타국인과 이방인들에게까지 그렇게 하라는 것과 재판을 굽게 하는 뇌물을 받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을 버리고 오로지 내편이 아닌 저편을 없애 버리는 것에만 몰두하기로 했습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매수’ ‘충동’ ‘거짓증인’은 얼마든지 용서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모세와 하나님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모세의 가르침도 하나님의 말씀도 따르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이중성’과 ‘배타성’이 장애물이 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언제 이중적이고 배타적인 사람들이 됩니까. 하나님을 향한 생명력 있는 관계를 잃어버리면 그렇습니다. 우리가 언제 하나님과 생명력 있는 관계를 누릴 수 있습니까. 그것은 성령 안에 거할 때입니다.

‘성령이 아니 계시다면 하나님은 멀리만 계신다 / 성령이 아니 계시다면 그리스도는 과거에 머무신다 / 성령이 아니 계시다면 복음은 죽은 문자에 불과하다 / 성령이 아니 계시다면 교회란 한낱 조직에 불과하다 / 성령이 아니 계시다면 권위란 한낱 지배하는 것일 뿐 / 성령이 아니 계시다면 선교란 한낱 선전광고에 불과하고 / 성령이 아니 계시다면 성례는 한낱 과거의 회상일 뿐 / 성령이 아니 계시다면 그리스도인의 행위는 노예들의 윤리에 불과하다(이냐시오 드 라따꾸이의 ‘성령 그 생명의 의미’).

우리는 성령께 속한 사람입니다. 거짓증인, 충동, 매수 이런 것들로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데반은 거짓, 충동, 매수로 얼룩진 그 재판정에 천사 같은 얼굴로 서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그런 일과는 전혀 상관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편을 가르고 미워하게 하고, 어떤 수를 써서라도 상대방을 죽이려는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온전히 서십시오. 주께 속한 자로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고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십시오(미 6:8).

기도 : 하나님, 매수와 충동, 거짓증인으로 지켜야 하는 가치들이 있다면 그것을 과감하게 우리 안에서 버리게 하옵소서. 주께 속한 자로 성령 안에서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고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조경열 목사(아현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