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 선원 탈출 40분 뒤에도 선실 대기 학생들 충분히 살릴 수 있었다
입력 2014-04-29 05:11
안타까움 더하는 ‘마지막 카톡 10시17분’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단원고 학생의 카카오톡 메시지가 마지막으로 발송된 지난 16일 오전 10시17분. 이 시각은 오전 9시30분 해경 구조정이 도착하고도 47분이 지난 뒤다. 퇴선명령 등 조금만 이른 대처가 있었다면 이 학생이 생존했을 수도 있음을 말해준다. 선박직 승무원들은 이보다 약 40분 전인 오전 9시38분쯤 승객들을 버린 채 모두 탈출하기 시작했다. 세월호 사고 해역의 이 같은 당시 상황은 해양경찰청이 28일 공개한 구조 초기 영상에 생생하게 담겨 있다. 영상은 해경 요원이 휴대전화로 촬영했으며 오전 9시28분58초부터 오전 11시17분59초까지 상황이었다.
◇오전 10시17분 사고 해역에서는=해경이 공개한 영상에 담긴 오전 10시17분 상황은 세월호의 좌현이 완전히 물속으로 사라진 상태였다. 이미 90도 이상 기울어 있었다. 파랗게 도색된 세월호 밑바닥이 물 밖으로 드러났고 선체의 3분의 1 정도만 수면 위에 올라와 있었다. 5층 조타실 부분도 거의 물에 잠긴 뒤였다.
당시 사고 해역 상공에는 해경 헬기가 최소 2대 선회 중이었다. 해상에는 고속보트들이 분주하게 세월호 주변을 돌아다녔으며 어선으로 보이는 선박들은 주변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고속단정 등은 세월호를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당시 해경은 오전 9시30분부터 구조작업을 벌였다. 오전 10시17분은 구조작업이 시작된 지 47분이 지났을 때다. 해군의 유도탄 고속함인 450t 한문식함도 현장에 도착해 있었다. 오전 10시쯤부터는 피쉬헌터호(1.11t) 등 2척이 바다에서 표류하던 탑승객을 구조하기 시작했다. 17분이 지난 당시 상황에서는 최소 7척 이상의 선박이 세월호 주변에 있었던 것이다.
헬기로 구조된 학생들은 인근 섬으로 이송되던 상황이었다. 오전 10시14분쯤 5명, 20분에 또 5명, 22분에 6명이 각각 이송됐다.
◇오전 11시18분까지 통한의 1시간1분=이 학생이 마지막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시각에 이미 배에는 물이 차기 시작했지만 세월호가 선수 일부만 남긴 채 사실상 완전 침몰한 때는 오전 11시18분이다. 최소한 1시간 동안은 배 안에 생존자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사고 초기에 적극적인 내부 수색·구조 작업이 이뤄졌으면 더 많은 생존자를 구출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학생들이 갑판으로 나오기만 했어도 참변을 면할 수 있었을 상황이다.
카카오톡 메시지가 발송됐을 당시 학생들은 물이 차지 않은 우현 객실 부근에서 애타게 구조를 기다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선체 내부에서는 “선실이 안전하니 머무르라”는 방송 대신에 “여객선 침몰이 임박했으니 탑승객은 바다로 뛰어내리는 상황에 대비하라”는 내용이 나오고 있었을 때다. 세월호에 근접한 해경 함정에서도 “밖으로 탈출하라”는 방송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선체가 90도 이상 기운 상태여서 학생들의 힘만으로는 탈출이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상태에서 불과 3분 뒤인 10시20분 선체의 90%가 물속으로 잠겨버렸다. 에어포켓이 형성되지 않았다면 이 무렵 상당수 탑승자가 급격히 차오르는 물에 맞닥뜨렸을 것이다. 만약 선장과 선원들이 배안에서 해경 등과 함께 선체 수색 작업을 벌였다면 더 많은 생존자를 구출할 수 있었겠지만 이들은 탈출하고 난 뒤였다.
해경은 또 오전 10시8분쯤 망치 등으로 배 유리창을 깨고 7명을 구조했다고 밝혔다. 출동했던 해경 관계자는 “당시 유리 파편이 튀어서 해경 요원이 다쳤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내에 진입하지 않은 과정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아울러 해경은 세월호에 도착해 선내 방송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고도 덧붙였다. 적극적인 내부 수색 작업이 벌어지지 않은 문제와 맞물려 논란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비정한 선원들=탈출을 해도 너무 다른 모습이 해경 영상에서 드러났다. 한쪽에는 다급하게 탈출하는 이준석(69) 선장 등의 모습이, 다른 영상에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구명정을 타고 질서 있게 경비정에 오르는 학생들 모습이 담겼다.
영상은 16일 현장에 도착한 해경 경비정 123호 직원이 휴대전화로 찍은 것이다. 약 10분 분량의 영상은 10~20초 내외의 파일 49개로 나뉘어 제공됐다.
앞부분에는 해경 123정이 세월호 사고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모습이 나타난다. 다급히 오가는 무전기 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해경이 도착해 구명정을 띄운 오전 9시38분쯤에는 세월호가 이미 50~60도가량 기울어져 있었다. 123정이 세월호 좌현에 접근하면서 3층 복도 기관부원 7명이 구명정에 올라탔다. 또 조타실에 모여 있던 이 선장 등 승무원 7명도 황급히 구명정으로 몸을 피했다.
이들은 운항 중 반드시 입어야 하는 제복을 입지 않은 상태였다. 이 선장은 심지어 팬티 차림으로 옮겨 타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조타실 옆에는 구명벌 46개가 있었지만 선장 등 승무원 누구도 이를 작동시키지 않았다. 9시49분쯤에는 구조작업 중임에도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로 뛰어든 승객 모습이 보였다.
반면 선장 등이 구조된 이후 구명정에 오른 앳된 여학생 등은 9시51분 해경의 지시 아래 질서 있게 123정에 올라탔다. 하지만 당시 해경은 “현장에서는 승무원, 승객이 구분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왜 이제서야 공개했나=해경은 사고 발생 후 12일이 지나 영상을 공개한 이유에 대해 “함정에 보관하다가 선원 집단 탈출 장면을 촬영해놓고 공개하지 않는다는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내놓게 됐다”고 밝혔다. 해경 관계자는 “휴대전화로 촬영한 해경 요원이 사람들을 구조하느라 용량이 큰 동영상을 전송할 시간이 없었는데 합동수사본부가 필요하다고 해서 동영상을 전송하려고 배 타고 나와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영상에는 해경이 선체 내부로 진입해 적극적인 구조 활동을 벌이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점을 의식해 동영상 공개를 미뤘다는 의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진도=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