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청구 싱푸로 르포] 베이징 민원 거리 ‘행복로’… 사라진 행복

입력 2014-04-29 03:27

28일 저녁 무렵 중국 베이징 남역(南驛)이 코앞에 보이는 둥청(東城)구 싱푸(幸福)로 인도변.

‘상팡(上訪)’이라고 부르는 민원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노숙을 하면서 진을 치고 있는 현장이다. 낮에는 햇볕을 피해 여기를 떠났던 사람들이 황혼이 깃들자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곳과 부근 융딩먼(永定門) 장거리버스 정류장 일대를 포함해 1㎞가량 되는 거리는 ‘상경 민원인 대본영’으로 불린다. 동네 이름은 ‘행복로’이지만 억울한 사람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마을이다.

주민 우자전(吳家珍·45)씨는 “이 동네에 ‘상주’하는 상경 민원인이 평균 200명 가까이 될 것”이라며 “명절, 노동절, 국경절 때에는 썰물처럼 빠졌다가 이 시기가 지나면 다시 나타난다”고 했다. 이곳이 상경 민원인 거리로 자리 잡은 건 고속철이 오가는 베이징 남역과 융딩먼 버스 정류장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신방국(信訪局)은 지난 23일 “민원 업무는 해당 민원이 발생한 현지 정부에서 우선적으로 해결토록 하라”는 새로운 민원처리 지침을 발표했다. 이 지침은 다음 달 1일부터 시행된다. 국가신방국은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민원을 처리하는 국무원 직속기관.

이에 따라 1980년대부터 상경 민원인 거리로 형성되기 시작한 싱푸로에도 변화의 기운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새 지침이 발표된 뒤 곧 단속이 시작될 것을 우려해 싱푸로를 떠날 채비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싱푸로 일대에서는 ‘민원인 거리’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다. 인도변에는 ‘상팡 필독서’ ‘구류소 조례’ ‘인민경찰법’ ‘신방 조례’ ‘형사소송법’ 등을 파는 좌판이 여기저기 펼쳐져 있다. 최근에는 중앙정부 고위 관리들의 집 주소와 우편번호 등을 담은 소책자가 등장했다. 직접 고관들 집에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할 때 이용하라는 것이다.

이곳 주변 길가 담장에는 온갖 억울한 사연이 페인트나 분필 등으로 빼곡히 적혀 있다. ‘청관(城管)’이라고 불리는 도시미관 관리 공무원들이 그 위를 회색 페인트로 덕지덕지 덧칠을 해놓은 곳도 많다.

가난한 농촌 사람들이 모인 만큼 이들이 숙박할 수 있는 ‘벌집’ 비슷한 곳도 많다. 하루에 15위안(약 2500원)이면 잘 수 있는 곳도 있다. 닝샤(寧夏)회족자치구에서 왔다는 왕원칭(王文卿·62)씨는 “차도 뺏기고 집도 팔렸는데 당국은 상팡도 못하게 막았다”고 호소했다.

싱푸로에서 1.5㎞가량 떨어진 융딩먼 부근에는 중국공산당 중앙 판공청, 국무원 판공청, 국가신방국 세 기관의 방문객 접수처가 있다. 이날 낮에는 새 민원 처리 지침이 실시되기에 앞서 서둘러 민원을 접수하기 위해 전국에서 수백명이 몰려들어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허난성에서 억울하게 땅을 뺏기고 국가신방국을 찾았다는 천후이천(陳恢臣)씨는 “지방정부 관리들은 모두 한통속인데 어떻게 그곳 신방국에서 억울함을 풀라는 말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