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유럽 ‘사회적 은행’ 뜬다… 수익률 일반은행 앞질러
입력 2014-04-28 02:33
수상한 돈은 받지 않고 사회에 해를 끼치는 사업에는 돈을 빌려주지 않으며 사회·문화적으로 가치 있는 사업에 적극 대출해주는 은행이 있다. ‘사회적 은행’으로 불리는 이들 은행은 최근 북미·유럽에서 안정적인 수익률과 성장세를 보여 주목받고 있다. 부실·불법 대출 등으로 소비자의 신뢰도가 급전직하로 떨어진 국내 은행들이 본받아야 할 ‘착한 금융’ 모델이다.
사회적 은행이란 대출·투자 대상을 선정할 때 공익 여부나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따지는 은행이다. 신재생 에너지와 유기농식품, 친환경 건설, 대안학교 사업 등 환경과 윤리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업에만 투자한다. ‘GABV(가치를 추구하는 은행의 국제연합)’라는 연합기구에 소속된 18개국 25개 은행이 대표적이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가 27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GABV 소속 사회적 은행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전에는 글로벌 은행들에 비해 수익성이 나빴지만 위기 이후엔 낮은 변동성과 함께 수익률 면에서도 우위를 보이고 있다. 2003∼2007년 0.78%이던 글로벌 은행 28곳의 총자산순이익률(ROA)은 2008∼2012년 0.37%로 0.41% 포인트 급감한 반면, 사회적 은행 18곳의 ROA는 같은 기간 0.59%에서 0.53%로 0.06% 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쳤다.
우리나라 시중은행들은 금융위기 때 자산규모가 급감하는 등 대외 충격에 취약한 모습을 드러냈지만 사회적 은행들은 대부분 위기의 진원지(북미·유럽)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10% 내외의 자산 성장세를 보였다.
독일 GLS은행은 자산규모가 2012년 기준 35억8600만 달러(3조7300억원)로 한국의 주요 은행에도 크게 못 미치지는 수준이지만 지난해까지 4년 연속 독일 내 ‘올해의 은행상’을 받는 등 인지도는 높다. 총자산이 197억900만 달러로 GABV에서 가장 많은 크레디 코페라티프(프랑스)는 조세회피처에 자회사를 두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사회적 은행들이 안정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높은 고객 충성도와 실물경제에 기반한 투자, 운영의 투명성 덕분인 것으로 분석된다. 사회적 은행은 수신 금리가 일반 시중은행보다 낮은데도 불구하고 윤리적 동기에 따라 유입된 고객들이 굳건히 거래를 유지하고 있다. 캐나다 워털루대 올라프 베버 교수는 “금융위기 후 선진국에선 대형은행의 행태에 실망한 사람들이 사회적 은행으로 계좌를 대거 옮겼다”고 설명했다.
파생·구조화상품에 대한 투자를 지양하고, 대출심사와 사후관리에 외부 기관을 활용하는 것도 사회적 은행들이 리스크를 낮추는 요인으로 꼽힌다.
반면 국내 대형은행들은 이탈이 심한 부자 고객을 붙잡기 위해 프라이빗뱅킹(PB)을 강화하고 있지만 실적 부진의 늪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대규모 대출사기에 연루되는 등 사고가 잇따른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올해 1분기 당기순이익이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2.7%, 35.4% 감소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이학승 선임연구원은 “소비자 신뢰 회복이 중요한 과제로 대두된 국내 은행들은 사회적 은행의 성공 사례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며 “봉사·자선활동보다 은행 본연의 업무인 예금·대출에서 사회적으로 도움되는 역할을 확대하는 것이 은행의 지속가능 경영에 더 적합하다”고 말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