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해결 강력 촉구...한일관계엔 미묘한 온도차
입력 2014-04-26 04:35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5일 한·미 정상회담 직후 이뤄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일 간 과거사에 대한 일본 정치 지도자와 국민의 올바른 인식의 중요성을 이례적으로 강조했다. 이 문제에 대한 인식 정립 없이는 한·일 관계 개선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강도 높은 표현을 쓰면서 문제 해결을 주문했다.
그러면서도 경색 국면을 이어가고 있는 한·일 양국 관계에 대해선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과거사 해결을 위한 일본의 진정성 있는 실천을 강조한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과 비교해 보면 한·미 간에 미묘한 시각 차이를 드러낸 측면도 있다.
◇오바마 “끔찍한 인권침해” 직접 거론=우선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끔찍하고 지독한 인권침해(This was a terrible and egregious violation of human rights)”라고 언급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한·일 간 과거사 문제의 상징처럼 돼 있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제3국이랄 수 있는 미국 대통령이 이처럼 높은 수준의 표현을 한 전례는 찾기 어렵다. 오바마 대통령은 “전쟁 상황임을 감안해도 매우 끔찍한 일이었다”며 “우리는 그들(위안부 피해자) 목소리를 들어줘야 하고 그들은 또 존중받아야 한다”고도 했다. 이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일본 국민들은 과거에 대해 보다 솔직하게 공정하게 인식돼야 한다는 점을 알고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베 총리의 역사 인식 변화와 위안부 문제에 해결책 마련을 우회적으로 압박한 것이다. 이런 언급은 지난 24일 미·일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정당화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한·미·일 3각 안보협력 재건을 위해 노력해온 미국 측을 당혹스럽게 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미국은 ‘한·일 간 미래’, 한국은 ‘일본의 실천’에 방점=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언급은 실제로는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평가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일본과 한국 국민에게 드리고 싶은 말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라며 ‘미래’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과거사를 둘러싼 긴장을 해소하는 동시에 미래를 내다보고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는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속담을 인용하면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진정성 있는 조치를 거듭 강조한 박 대통령의 언급과 비교하면 여전한 온도 차이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은 한·일 과거사 갈등과 관련한 외신기자의 질문에 3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을 언급하며 “회담 전 일본 지도자가 보인 여러 약속들이 있다”며 “무라야마나 고노담화를 역대 정부와 같이 계승하고, 위안부 피해자 분들에 대해서 성의 있는 해결을 위해 힘쓰겠다는 얘기들이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모처럼 한·미·일 정상회담을 통한 합의가 이뤄진 마당에 이것이 모멘텀을 잃으면 안 되지 않겠느냐”면서 “이를 살려나가려면 아베 총리가 약속한 부분에 대해 진정성 있는 실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동북아 분쟁도 국제규범 통한 해결 강조=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영토 문제로 최악의 관계를 이어가는 동북아시아의 긴장상태에 대해서도 국제규범과 외교, 법을 통한 문제 해결을 거듭 주문했다. 중·일 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를 거론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특히 “미국은 중국 봉쇄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며 “우리는 중국의 평화로운 부상에 관심이 있고, 또 중국이 책임 있고 강한 법치 지지국이 되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역내 국가들이 국제규범을 준수해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함으로써 아시아·태평양 역내에서 힘을 앞세워 영향력을 키워나가려는 중국을 사실상 견제하려는 취지로 분석된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