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가 윤석경 집사 “힘들때면 십자가를 빚었습니다”
입력 2014-04-26 02:24
환갑을 넘긴 딸에게도 부모의 임종은 슬프다. 시부모와의 작별도 마찬가지다. 시아버지가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났다. 시어머니 어머니 아버지가 석 달 새 차례대로 소천했다. 2011년 얼굴을 타고 흐르던 눈물을 수없이 닦던 해였다. 어버이로부터 평생 받은 사랑을 돌아봤다. 도예가인 그는 남은 시간 그 사랑을 나누고, 빚기로 했다. 첫 작업은 하나님의 사랑, 그만한 크기의 십자가를 빚는 일이었다.
윤석경(64) 연동교회 집사는 지난해 말 도판 수백 점을 붙인 높이 5m, 폭 3m, 두께 1.15m 대형 십자가 ‘실존의 십자가’를 완성했다. 도판은 흙을 빚어 구운 것이다. 그가 작업하는 경기도 남양주 ‘도자골 달뫼’(dalmoi.com)를 18일 방문했다. 이곳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상설 전시공간이다. 달뫼는 지명 ‘월산’(月山)의 우리말이다. 실존의 십자가는 한눈에도 대작(大作)이었다.
“개인전 20차례 할 만한 분량의 도판이 여기 붙어 있어요. 이 작품 만드는 동안 전 아팠던 갑상선이 나았고, 제 작업에 무관심하던 남편은 직접 다이아몬드 그라인더(자기를 자를 수 있는 기구)를 들고 작업에 참여했어요. 놀라웠죠. 언젠간 도판으로 건물 전체를 이은 ‘도자기 교회’를 짓고 싶어요.”
달뫼는 그가 서울에서 10여년 운영하던 갤러리를 정리하고, 1997년부터 조금씩 꾸며온 곳이다. 1만5000여㎡ 넓이다. 윤 집사는 실존의 십자가 뒤편으로 안내했다.
“작은 도판들이 모여 큰 십자가를 이뤘지요. 얽히고설킨 제 삶이 여기 담겨 있어요. 바로 선 십자가는 예수님, 기대 선 십자가는 저에요. 제목은 ‘주님 십자가 의지하여’예요. 제가 결혼 후 시집살이하면서 참 힘들었어요. 하나님께 많이 의지했어요.”
윤 집사는 주로 십자가를 소재로 도예 작품을 만들고 있다. 그는 “십자가는 내 삶을 간섭하고 이끄시는 실존”이라고 말했다. 달뫼 마당에는 ‘실존의 십자가’ ‘보혈의 십자가’ ‘세상 속의 십자가’ 등이 전시돼 있다. 십자가 모양의 위치, 색깔, 구성에 따라 다양한 작품을 만들고 있다. 그가 손님을 위해 만든 찻잔에도 복음을 상징하는 잎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서울 종로의 부유한 가정에서 오남매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저명한 김원 서소언 화백에게 그림을 배웠다. 경희대 도예과 재학 시절 캠퍼스에서 만난 남편과 1973년 결혼했다.
“시어머니는 ‘넌 커피랑 참기름을 많이 먹고 살아서 살림을 거덜 낸다’며 구박을 많이 하셨어요. 화나는 일이 있으면 새벽 1∼2시에도 저희 부부 방에 들어오시고….”
친정의 도움으로 분가했지만 시어머니의 꾸지람은 평생 이어졌다.
“시어머니 성품을 이해하려고 하나님을 붙들었던 것 같아요. 매일 새벽기도 하고 십자가 작업에 매달리고요. 2006년 첫 개인전을 했어요. 쉰을 넘긴 나이에 기독도예작가가 된 거죠. 다 주님의 은혜 같아요.”
시아버지 별세 후인 2011년 8월 시어머니가 노환으로 누우셨다.
“왠지 시어머니를 간병인 손에 돌아가게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돌아가시지 전 18일 동안 제가 병원에서 곁을 지켰어요. 간병하는 동안 ‘네가 양반집 규수다. 그동안 네가 얼마나 나한테 잘했는지 잘 안다. 자랑스럽다. 미안하다. 고맙다’고 하셨어요. 평생 쌓인 마음의 앙금이 스르륵 녹아내렸어요.”
9월 친정어머니가 세상을 떴다. 다음 달 아버지마저 어머니를 따라갔다.
“사랑도 받은 대로 주고 상처도 받은 대로 준다고 하잖아요. 양가 부모를 모두 잃고 받았던 사랑을 돌려주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는 전부터 이웃 돌보는 일을 해왔다. 윤 집사는 장애인, 치매노인 등을 대상으로 1000시간 넘게 도예 등을 이용해 미술치료 상담을 했다. 그 공로로 2006년 남양주시 여성상을 받았다. 올해 6월쯤 달뫼에서 음악회를 열고 7월에는 국제워크캠프기구와 공동으로 프랑스 대학생을 대상으로 도예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남양주=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