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여객선 침몰] 왜 급변침 했나, 학생들 왜 선실에 남으라 했나… 세월호 풀리지 않는 5대 미스터리

입력 2014-04-19 02:47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큰 여객선이 암초가 드문 해역에서 침몰한 것부터 눈앞에 훤히 보이는 승객들의 생명을 안타깝게도 구하지 못한 재난 대응체계의 허점까지 숱한 물음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여객선 운항의 모든 권한을 가진 선장이 맨 먼저 탈출을 감행한 세월호는 승객들의 생사를 가르는 30분간의 ‘골든타임’을 허비하다가 끝내 최악의 참사로 치달았다. 세월호 침몰사고를 둘러싸고 불거진 미스터리는 사고해역에 잦은 소용돌이처럼 참사현장 주변을 맴돌고 있다.

왜 급한 변침(變針)을 했을까=세월호가 급히 뱃머리를 돌리다가 선실 증축으로 상체가 커진 여객선이 무게중심과 복원력을 잃었고 실려 있던 화물까지 한쪽으로 쏠리면서 참사를 맞았다는 데 수사결과가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왜 급히 방향을 틀었는지에 대해서는 오리무중이다. 선박이나 섬을 피하기 위해 급격히 방향전환을 했을 것이란 추측만 난무하고 있다. 검찰과 경찰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이준석 선장과 조타수, 항해사가 이에 대해 뭐라고 진술했는지에 대해서도 밝히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암초 충돌 가능성도 거론된다. 사고해역은 해도에 드러나지 않는 암초가 적지 않은 암반지대라는 점도 여전히 간과할 수 없다. 2시간30분 인천항을 늦게 출항한 세월호는 입항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권장항로를 이탈해 수심이 낮은 항로를 운항했다. 배 하부에 공기를 더 채워 부력과 속도를 높였다.

사고 1시간 전부터 이상징후 의혹=16일 오전 8시49분(선박자동식별장치·AIS), 8시52분(전남소방본부), 8시55분(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 8시58분(목포해경). 여객선 세월호에서 공식적으로 이상 징후가 감지되거나 신고된 시각이다.

그러나 1시간 전부터 이상징후를 느꼈다는 승객, 선원, 목격자 등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구조된 선원 송모(20)씨는 “승객 배식이 한창 이뤄지고 있던 때부터 배가 기울기 시작했다”며 “오전 8시 조금 전이었다”고 말했다.

보일러실에 근무한 선원 전모(61)씨도 “오전 7시40분쯤 업무를 마치고 업무 일지를 쓰던 중 갑자기 배가 기울었다”고 전했다.

인근 해역에서 작업하던 어민들의 목격담도 이를 뒷받침한다.

진도군 조도면 주민 이모(48)씨는 “미역 양식 때문에 새벽 일찍 나갔는데 오전 8시 무렵 큰 배가 멈춰 있었다”며 “그렇게 큰 배가 서 있어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학생들 왜 선실에 남아있으라 했나=학생들을 선실에서 나오지 못하게 한 것이 선장의 판단 오류 때문인지는 검증해야 할 대목이다. 선실 밖으로 나오면 위험하니 나오지 말라고 했다고 하나 배가 침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점을 선장과 선원들은 알 수 있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생기가 넘치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학생들을 손쉽게 통제하기 위해 일부 선실문을 내부에서 아예 열지 못하도록 자물쇠를 채웠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세월호는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한 구명정도 당시 단단한 쇠줄로 채워두고 있었다. 만일의 사고는 안중에 없었다는 것이다.

해경 긴급 대피지시 묵살됐나=해경은 사고접수 직후 승객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신속히 긴급대피 지시를 내렸다는 입장이다. 제주해양관리단 해상교통관제센터(VTS)로부터 신고를 접수받은 지 6분 만인 16일 오전 9시6분쯤 선장 이씨에게 승객들의 긴급 대피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실 등에 보관돼야 할 무선교신 녹취록 등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해경 관계자는 “선박들과 주고받는 무선교신 내용은 너무 많아 대부분 녹취하지 않는다”며 “신고접수 뒤 선장 이씨에게 안내방송을 실시하고 구명뗏목 투하와 함께 승객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도록 했다”고 밝혔다.

규제완화에 따른 노후선박 운항 허가가 사고 불러왔나=사고선사인 청해진해운은 일본 가고시마현에 본사를 둔 일본 선사로부터 1994년 건조된 지 18년 된 세월호를 2012년 9월 사들여 선실을 증축하고 지난해부터 국내에서 가장 긴 인천∼제주 항로에 이 여객선을 취항했다.

정부는 1993년 29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서해훼리호 사고 이후 노후선박의 운항을 단계적으로 줄이겠다고 했지만 2009년 최장 30년까지 선박을 운행할 수 있도록 배의 수명을 다시 늘려줬다. 정작 세월호를 팔아넘긴 일본 선사의 경우 10년이 되면 여객선을 대부분 교체하고 있다. 관광산업 활성화 등을 명분으로 내세운 선사들의 집요한 규제완화 요구에 정부가 응했다가 화를 키웠다는 여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목포=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