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여객선 침몰] 출항준비부터 사후대처까지… 부실·불법으로 ‘재앙’ 예고

입력 2014-04-19 02:36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는 출항 준비부터 사고 발행, 이후 사고 대처 과정까지 곳곳에서 불법적 운항 행태와 부실한 관리·감독, 안전 불감증 등 여러 대형 참사의 요소를 안고 있었다.

부실한 준비 속 지연 출항=세월호는 지난 15일 오후 9시쯤 재앙의 그림자를 드리운 채 인천항을 떠났다. 짙은 안개 때문에 예정된 시간보다 2시간30분 정도 늦은 출항이었다. 이날 인천항을 출항한 선박은 세월호가 유일했다. 하루 종일 심한 안개 때문에 서해 5도 등으로 떠나려던 배들은 모두 일정을 취소했다. 세월호에는 승객과 승무원 475명이 탔고, 차량 180대와 컨테이너 박스 등 화물 1157t이 실린 상태였다. 그러나 세월호는 인천여객터미널 운항상황실에 탑승 인원을 총 447명이라고 28명이나 적게 허위 보고했다.

전문가들은 이후 사고 상황을 봤을 때 육중한 화물이 제대로 결박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급격한 방향전환 때 묶어둔 화물이 이탈해 한쪽으로 쏠리면서 선박의 균형을 무너뜨렸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생존 선원은 “컨테이너를 3∼4층으로 쌓은 뒤 쇠줄이 아닌 일반 밧줄로 묶어 놓았다. 배가 급격히 선회하면서 밧줄이 끊어졌을 수 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출항 상황을 담은 인천항 주변 CCTV를 확보했으며, 화물 결박상태를 확인·승인하는 해운조합 관계자 등을 불러 조사하고 있다. 선원법 7조는 선장이 출항 전 화물 상태 등을 검사토록 의무화하고 있으며 위반시 5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일각에서는 세월호가 항해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밸러스트 탱크에 저장된 물을 배출했다가 안정성을 잃었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밸러스트 탱크란 배의 부력을 조절하기 위한 평형수(수평을 맞추는 데 사용하는 물) 탱크를 말하는데, 평형수를 줄이면 배가 가벼워지고 부력이 커져 보다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 실제 사고 당일 세월호의 평균 속도는 20노트(시속 약 36㎞)로 지난 11일 평균인 17노트보다 3노트 더 빨랐다.

위험항로를 신참에게 맡긴 것은 ‘불법’=제주를 향해 남동쪽으로 운항하던 세월호는 16일 오전 8시48분 맹골수도(孟骨水道·진도 조도면 맹골도와 거차도 사이의 해역)에서 급격히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맹골수도는 거센 조류와 안개 때문에 업계 안전운항 규정에 ‘위험항로’로 지정된 곳이다. 여기서의 무리한 ‘변침’(變針·항로 변경)이 침몰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조타실 책임자는 입사한 지 4개월 된 3등 항해사 박모(26·여)씨였다. 박씨는 오전 8시부터 당직사관으로서 배를 몰고 있었다. 사고 지점 항로 운항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선장 이준석(69)씨는 조타실 외부에서 식사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고 한다. 이씨는 “휴식시간이라 쉬고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야 급히 조타실로 달려 왔다. 이는 ‘선박이 입·출항할 때나 좁은 수로, 위험 구간을 지날 때 선장이 직접 조종을 지휘해야 한다’고 규정한 선원법 9조를 위반한 것이다. 휴식시간이었더라도 3등 항해사가 아닌 1등 항해사 또는 운항장에게 조종을 맡기도록 돼 있다. 선박 조종에 미숙함을 드러낸 박씨 역시 업무상과실치사와 치상 혐의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선장과 일부 선원이 먼저 탈출한 것은 명백한 ‘불법’=세월호는 선박 이상 징후 발생 7분 뒤인 8시55분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제주VTS)에 처음으로 조난 신고를 했다. 5분이 지난 뒤 제주VTS는 승객들이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퇴선을 준비하도록 요청했다. 해경 역시 9시6분 무선교신에서 “즉시 구명조끼를 착용시키고 구명벌을 투하하라. 안내방송을 내보내 승객들을 대피시키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세월호는 “선내 방송 시스템이 (침수로) 고장나 방송을 할 수 없다” 응답했고, 이후 교신이 끊겼다.

이씨는 이 직후 일부 선원들에게 탈출을 지시했다. 그는 9시30분 조타수, 갑판장, 기관장 등과 함께 배를 빠져나와 9시50분쯤 선원 6명과 함께 해경에 구조됐다. 이씨는 구조선 탑승자 명단에 직업을 ‘일반인’으로 적었다고 한다.

반면 이씨가 버린 선박 안에서는 “움직이지 말고 방안에서 기다리세요”라는 안내방송이 오전 10시 무렵까지 계속된 것으로 전해졌다. ‘승객을 안심시키는 방송을 하라’는 지휘부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생존 직원들은 주장하고 있다. 승객들에게 “바다로 뛰어내릴 준비를 하라”는 방송은 결국 배 안에 물이 가득 찬 10시 15분에야 나왔다.

이씨의 어이없는 대처는 도덕적 측면뿐 아니라 법적으로도 명백히 책임을 묻겠다는 게 검·경의 판단이다.

선원법 10·11조는 ‘선장은 승객이 모두 내릴 때까지 선박을 떠나서는 안 되며, 선박에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는 인명, 선박 및 화물을 구조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다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승객 구조 의무를 방기할 경우 최대 5년의 징역형이 내려진다.

이씨에게는 이 외에 업무상과실치사 및 치상, 업무상과실선박매몰죄 등 최소 4개 이상의 혐의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지호일 정현수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