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김혜림] 가라앉는 세월호를 보며

입력 2014-04-19 03:32 수정 2014-04-21 19:42


하늘도 울었습니다. 자식의 생사조차 모르는 부모들의 애끊는 울음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엄마, 내가 말 못할까 봐 보내놓는다…사랑해.’ 가라앉는 배에서 엄마에게 보낸 한 아들의 문자 메시지에 목이 멥니다.

270여 명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세월호 사건도 인재(人災)라고 합니다. 무리한 항로 변경이라는 사고 원인은 접어두고라도 선장과 일부 선원들은 대피하면서 아이들을 비롯한 승객들에겐 “가만있으라”고 했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아비규환의 와중에도 자신보다 남을 돌본 이들이 있어 가슴 뭉클해집니다. 안내 방송 담당 승무원 박지영씨는 물이 가슴까지 차오르는데도 아이들에게 구명조끼를 나눠 주었답니다. 단원고 정차웅군은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벗어 친구에게 건네고 다른 친구를 구하기 위해 애썼답니다.

지영씨와 차웅군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그들의 죽음 앞에서 문득문득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내 아이들에게 그런 순간이 닥치면 어떻게 행동하라고 일러야 하나? 10여 년 전 일본 유학 중 도쿄 지하철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숨진 이수현씨의 뉴스를 들었을 때부터였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정신을 길러 줘야 한다’는 머리와 ‘그러다가 내 자식이 목숨을 잃어선 절대 안 된다’는 가슴이 맞섰습니다.

이 세상이 팍팍한 것만은 아니어서 의인들의 이야기는 심심찮게 들려왔습니다. 그때마다 자문해 봤지만 추는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란 게 쉽게 맞닥뜨리는 건 아닐 터이니…. 이렇게 눙쳤습니다.

이번에도 답을 내기 쉽지 않았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카카오톡에 올려봤습니다. 반응이 다양했습니다. “어른들이 잘못 살아서 아이들이 죽어 나간다”는 자성으로 시작됐습니다. “아이들 자신의 생명에 대한 태도는 부모가 어떻게 하라 말라 할 영역은 아닌 것 같다.” “어려운 이웃을 돕기는 해야 하지만 자신의 안전도 중요하다고 가르쳐야 한다.” 등등. 친한 친구는 이런 글을 남겼네요. “너희 아이들 왜 지방대 갔나 했더니 이제 알겄다. 엄마가 그런 데 정신 파니 ㅊㅊ.”

18일 아침 신문을 보면서 갈피를 잡고 있습니다. 전날 밤 단원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이 학교 1·3학년 학생들과 인근 고교 학생들이 무사귀환 집회를 열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아이들은 ‘무사히 돌아와 줘’ ‘아무것도 못해줘서 미안해’ ‘사랑해요’ ‘희망 잃지 마’ 등의 글귀가 적힌 종이를 든 채 친구들이 돌아오기를 기도했습니다.

이 집회에 나가겠다는 자녀를 잡아 책상 앞에 앉혀둔 부모도 아마 있을 것입니다. “네가 간다고 해서 죽은 친구들이 돌아오니? 공부나 열심히 해라!”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키운 아이들은 어떤 어른이 될까요? 세월호의 선장처럼 될 것 같습니다. ‘내 목숨이 가장 귀하다’는 생각에 아이들의 발은 묶어 놓은 채 자신은 구명정을 타고 뭍에 오른 그 선장말입니다.

세월호와 같은 사고가 이 땅에서 계속 일어나는 것은 제 안위만 생각하는 나쁜 어른들 탓입니다. 그런 어른으로 내 자식을 만들어선 안 되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머리가 월계관을 차지하려는 순간 친구의 글이 떠오르네요. 아이들에게 ‘네 이익도 중요하지만 이웃의 사정을 살펴야 한다’고 가르친다면 경쟁이 치열한 이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이 불쑥 솟아오릅니다. 그래도 중심 잡아야겠지요. 앞으로 흔들릴 때마다 세월호 선장을 떠올리겠습니다.

김혜림 문화생활부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