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이영미] ‘아동’ 이란 말은 위대한 발명품
입력 2014-04-18 02:57
범인은 잡아야 한다. 잘못도 따지고 죗값도 치르게 해야 한다. 범죄자는 비난하고 영웅은 칭송하고 희생자에게는 애도를 표한다. 비극 이후의 삶은, 그 모든 과정이 끝났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게 비극을 극복하는 공동체의 통과의례다. 다만 범인과 희생양 찾기는 다른 일이다. 손쉬운 희생양을 찾는 건 좋은 해법이 아니다. 울산과 칠곡에서 벌어진 기괴한 아동학대 사건이 알려진 뒤 타깃은 아동학대의 1차 적발 기관인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됐다. 학대 신고가 접수됐지만 아이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당신들, 대체 뭐하는 사람들이야. 이런 말 던져볼 만하다. 하지만 잘 물어야 답도 잘 나온다. 그들은 왜 제 역할을 못했을까. 이유는 언제든 있다.
부모들이 현관문을 열어 외부인을 들인 게 오래된 일은 아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베테랑 상담원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나아졌다”는 말이 실감난다. 몇 년 전만 해도 상담원은 경찰서 드나드는 게 일이었다. 가택침입에 성추행, 납치 혐의도 받았다. 맞았다는 아이 상태를 확인하러 집안에 들어가면 가택침입, 아이 때리는 어머니 손목을 잡으면 성추행, 아동 안전을 위해 격리보호 조치를 내리면 납치가 된다. 가족이라는 성역은 어찌나 견고한지, 발 디딘 외부인은 이런 식으로 응징됐다.
지난 10여년 아동보호전문기관은 ‘가족이 안전하고 완전무결하다’는 신화를 조금씩 무너뜨려왔다. 매뉴얼을 만들고 전문가를 길러 가족을 공적 감시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현실의 가족은 불완전하고 때로 위험하기까지 했다. 따라서 가족 안에도 공동체의 시선은 필요하다. 인식은 느리지만 착실히 바뀌었다. 요즘에는 학대 부모들조차 아동보호전문기관의 현장조사에는 순순히 응한다.
불행히도 변화는 딱 여기까지였다. 칠곡 사건에서 드러났듯 가족이 공모했을 때 학대를 감지해낼 정도로 시스템은 정교하지 못했다. 한 상담원은 “아이가 엄마와 떨어져 시설에서 생활한 지 1년이 지나서야 ‘맞았다’고 털어놓았다”고 말했다. 상황을 파악하자면 아이가 학대자로부터 떨어지는 게 첫번째라는 얘기다. 현재는 학대의 심증이 있어도 아이를 격리보호한 뒤 증거를 찾는 게 불가능하다. “당장 애들을 가족으로부터 떼어내면 어디에 보내나요?” 현장 상담원의 첫 고민이 해결되지 않는 한 상황이 나아지길 바라기는 어렵다.
학대 발견 이후의 시스템도 아직은 부실하다. 학대 사실을 확인한대도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학대부모’라는 딱지를 붙이고 손을 턴다. 가해자가 상담이나 교육을 거부하면 강제로 시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동을 무조건 가족으로부터 떼어내는 게 정답도 아니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가 복지와 범죄 근절이 충돌하는 현장이라고 말한다. 고민은 여기에 있다. 가족의 역할은 대체가 불가능하거나 적어도 쉽지 않은 것들이다. 부모는 가해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동이 보유한 거의 유일한 경제적, 정신적 안전망이기도 하다. 따라서 아동은 안전하도록 지켜주되 필요한 경우 가족을 유지할 묘안을 찾아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원칙은 분명하다. 절대적으로 보호해야 할 ‘아동’의 존재다. 누구는 인류가 이뤄낸 빛나는 성취로 다른 것들을 꼽겠지만, 나는 아동이라는 단어야말로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믿는다. 아동이라는 말을 하면서 우리는 약속을 했다. 작고 여리고 미숙한 것들이 크고 단단하게 여물 때까지 기다려주겠노라. 그 약속을 지키자면 공동체가 할 일이 많다. 모든 가족이 다 잘 해낼 수 없다는 건 너무 분명해졌다.
이영미 사회부 차장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