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여객선 침몰] 부모 잃은 5세 어린이, 승객들이 20m 안고 기어올라 구해

입력 2014-04-17 04:48


아비규환 속 서로 도운 영웅들

대규모 실종·사망 사건이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에는 승객들이 힘을 모아 극적으로 서로를 도운 미담도 있었다.

16일 세월호 3등칸 플로어룸에 묵었던 승객들은 배가 침몰할 당시 부모를 잃고 혼자 있는 권모(5)양을 발견했다. 권양은 두려움에 눈물도 흘리지 못하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때 승객 김모(59)씨와 일행 4명은 망설임 없이 권양을 안고 기울어진 배를 오르기 시작했다. 배가 급격히 기울면서 바닥에 떨어져 머리를 다친 김씨는 애를 구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김씨는 “눈에 보이는 건 모두 잡고 올라갔다”며 “혼자서는 절대 못 올라갈 높이여서 일행이 없었다면 살기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세월호 폭이 22m인 것을 고려했을 때 이들은 20m 이상을 올라간 것이다.

마지막에는 수학여행을 온 여고생들도 힘을 보탰다. 김씨 일행이 20여m를 올라왔을 때 여고생들이 권양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줬다. 한 여고생은 두려움에 떠는 권양을 꼭 안고 구조를 기다렸다. 이들의 도움으로 권양은 무사히 목포한국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권양이 구조됐지만 권양의 부모는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고 있어 병원 관계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김홍경(60·서울 화곡동)씨는 여객선 침몰 직전까지 탑승객 20여명을 구하고 마지막으로 탈출했다. 지난주 제주도의 한 기계설비회사에 입사한 김씨는 첫 출근을 위해 배에 올랐다가 사고를 맞았다. 그는 오전 8시40분쯤 배가 45도로 기울자 2층 객실에서 함께 있던 3명의 남성과 함께 객실을 뛰쳐나왔다. 그는 배에서 탈출을 하려는 순간 갑판 위로 올라오지 못하고 배 안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 학생들을 목격했다. 배가 기운 탓에 학생들이 서 있던 곳과 난간까지의 높이가 6~7m에 달해 탈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학생들을 구출할 위한 장비가 없자 객실에 있던 커튼 20여장을 한데 묶어 로프를 만든 뒤 구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로프로 만든 커튼이 두꺼워 학생들이 올라오기에는 벅찼다. 복도에 있는 물 호스를 사용해 또다시 구조에 나섰으나 호스가 늘어나는 바람에 구조에 실패했다. 김씨는 “구조할 도구를 찾던 끝에 소방호스를 발견해 함께 객실에서 빠져나온 다른 남성 3명과 함께 학생들을 구조하기 시작했다”며 “하지만 구조에 나선지 얼마 안돼 물이 차올라 황급히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침몰하는 배에서 마지막으로 탈출한 그는 “객실 안에 있던 다른 승객들은 배가 90도로 기울어지면서 문이 하늘 위로 향해 도저히 탈출할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아마 많은 수의 승객들이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며 협동심을 발휘한 학생들도 있었다. 수학여행에 나선 단원고 박솔비(17) 김주희(17)양은 “여객선 3층 로비에서 친구들과 다과를 즐기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데 ‘쿵’ 소리와 함께 갑자기 배가 기울어져 같은 장소에 있던 50여명의 친구들 중 일부가 벽쪽으로 넘어졌다”며 “이 가운데 정현진 친구가 소파에 깔려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는데 친구들과 옆에 있던 아저씨들이 소파를 들어올린 뒤 친구를 부축하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며 다행스러워했다.

특히 박양은 “구명조끼가 부족해 착용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배의 기울임이 더 심해지면서 그대로 바다에 떨어졌는데 다행히 해양경찰의 고무보트가 다가와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며 아찔한 상황을 회상했다. 이예림(17)양은 “헬기와 구조선이 도착할 때까지 40여명의 친구들과 함께 기울어진 여객선 복도의 안전봉을 잡고 앉아 서로 팔짱을 낀 채 의지하고 기다리다가 순차적으로 구조됐다”고 말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