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여객선 침몰] "평소 착한 차웅이… 친구 돕다 탈출 못했을 것"
입력 2014-04-17 05:41
사망·실종자 안타까운 사연
여객선 침몰 사고에서 안산 단원고 학생 중 가장 먼저 사망이 확인된 2학년 정차웅(17)군은 다른 학생들의 탈출을 돕다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정군은 여객선 객실의 ‘방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객실 학생들을 대표하는 역할이었다. 평소 자상하고 책임감이 강했던 정군이 친구들을 끝까지 대피시킨 뒤 늦게 빠져나오다 사고를 당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친구들은 “(정군은) 착하기로 소문난 아이”라며 “평소 누가 짓궂은 장난을 해도 화낼 줄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교사들도 정군을 성실하고 예의바른 학생으로 기억했다. 수학여행에 불참한 같은 반 친구 임재건 군은 정군에 대해 “(내가) 병 때문에 몸이 아파 지각하면 꼭 ‘몸은 좀 괜찮냐’고 걱정해 주곤 했다”며 “아마 친구들을 먼저 대피시키느라 사고를 당했을 것이다. 정말 가슴이 아프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학생들은 급박한 생사의 순간에 가족과 친구에게 메시지를 남겨 두려움과 애정을 표현했다. 단원고 신모군은 어머니에게 ‘사랑한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사고 소식을 몰랐던 어머니는 ‘왜…카톡을 안 보나 했더니?…나도 사랑한다♥♥♥’고 답했다.
신모(18)양은 기우는 여객선 안에서 ‘친구들과 뭉쳐 있으니 걱정하지마’라고 아버지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사고 소식에 애가 탄 아버지는 ‘가능하면 밖으로 나가라’고 했지만, 신양은 ‘지금 복도에 애들이 다 있고 배가 너무 기울어 나갈 수 없다’는 안타까운 답변을 남겼다.
이 학교 연극부의 단체 카카오톡에도 급박한 순간 학생들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한 학생은 사고 직후인 오전 9시5분쯤 ‘우리 진짜 기울 것 같아. 얘들아 진짜 내가 잘못한 거 있으면 다 용서해줘. 사랑한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다른 학생들도 ‘배가 정말로 기울 것 같다’ ‘연극부 사랑한다’고 잇따라 글을 남겼다.
‘웅기’라는 이름의 카카오톡 사용자는 오전 9시23분 형에게 사고 소식을 카카오톡 메시지로 보냈다. 형은 곧바로 ‘정신 차리고 마음을 굳게 먹으라’고 답했다. 그러나 형이 보낸 답 메시지는 수신되지 않았음을 표시하는 숫자 ‘1’이 사라지지 않았다. 동생은 형의 메시지를 보지 못한 것이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딸에게 타이태닉호 비극을 이야기하며 출발을 만류했던 어머니 소식도 전해졌다.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단원고 2학년 3반 김모양 어머니는 딸이 여객선을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다는 소식을 듣고 “타이태닉호 침몰한 날이 언제인지 아느냐”며 출발을 말렸다. 실제 김양이 탑승한 여객선 침몰사고와 타이태닉호 침몰사고 날짜는 불과 이틀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김양은 어머니의 만류 사실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한 뒤 “친구들과 꼭 가겠다”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단원고는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 여객선을 이용한 수학여행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들은 선호도 조사에서 비행기보다 선박을 이용한 여행을 많이 선택했다. 여객선 여행이 TV에 많이 소개되고 야간 불꽃놀이 이벤트 등도 있어 인기가 높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몸이 불편한 이 학교 장애학생 4명은 항공편을 이용해 사고를 모면했다.
환갑을 맞아 함께 제주여행을 떠났던 용유초등학교 동창생 17명이 갑작스런 침몰사고에 휩쓸려 뿔뿔이 흩어졌다. 이들 중 일부는 구조됐지만 대부분은 아직 생사를 확인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동창생 중 생존자로 확인된 이중재(60)씨의 부인(54·인천 부평구)은 “남편은 모교 지원을 받아 동창생들과 환갑 기념 2박3일 제주도 여행길에 올랐고 동창생 모두 부부들끼리 서로 잘 아는 사이”라며 “남편이 살아나 다행이긴 하지만 다른 동창생 대부분은 생사 확인이 안 된다니 너무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아들과 아들의 약혼녀가 침몰한 여객선에 탑승한 정모(여·경기도 광명)씨도 이날 오전 사고 소식을 듣고 인천의 청해진해운 본사로 달려갔다. 아들은 당초 안개가 너무 심하고 출항이 늦어지자 여행을 취소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배에 실은 차를 다시 내릴 수 없다는 여객선 관계자의 말에 그냥 배를 탔다가 사고를 당했다. 정씨는 직원들에게 “아들이 연락이 안 된다”며 생사 여부를 물었지만 구조자 명단에서 아들과 약혼녀의 이름을 끝내 발견하지 못하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정씨는 “어젯밤 며느리가 전화해서 ‘다음날 아침에 도착하면 연락한다’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