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학교폭력’, CCTV보다 중요한 건 ‘교사의 눈’
입력 2014-04-15 03:01
충남의 한 예고에 다니다 2012년 자퇴한 A양(18)은 아직도 기숙사 신입생 시절을 생각하면 가슴이 쿵쾅거린다. 기숙사 규칙을 어기면 ‘오리걸음’으로 기숙사 주변을 돌거나 ‘기마자세’로 몇 시간을 서 있어야 했다. 신입생은 무조건 90도로 인사하도록 강제한 선배들의 ‘텃세’가 생생했다. A양은 “여학생들은 기합으로 끝났지만 남학생은 선배들에게 맞는 경우가 허다했다”며 “‘그들만의 교칙’이 지배했던 기숙사는 그야말로 무법천지였다”고 회고했다.
서울의 한 외고 신입생 B군은 지난달 스쿨버스에서 낯선 폭력을 경험한 이후 스쿨버스를 타지 않는다. 등굣길 버스 안에서 동급생과 가벼운 대화를 나눴을 뿐인데 “조용히 하라”는 3학년 선배의 꾸중을 듣고 1학년생 모두가 고개를 숙인 채 학교까지 가야 했다. B군은 “학교 안에서 느끼지 못한 폭력의 두려움을 스쿨버스에서 느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학기 초를 맞아 각 학교의 CCTV 운영 현황을 점검하고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하는 등 대대적인 백화점식 학교폭력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경남 진주외고에서 잇따라 발생한 학생 사망 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방식으로 학교폭력 대책에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진주외고에서 발생한 2건의 폭력 사건이 모두 기숙사, 옥상 등 교사의 감시나 CCTV가 없거나 설치하기 어려운 곳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학교폭력 ‘발생장소’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심각한 학교폭력은 옥상·스쿨버스·동아리방 등 CCTV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14일 “학교폭력은 ‘힘의 불균형’이 일어나는 곳, 즉 교사가 없는 사각지대에서 많이 일어난다”며 “점심·저녁시간, 쉬는 시간 등 학교폭력의 ‘사각시간’에 대해서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 당국의 설문조사 위주, 성공사례 위주의 학교폭력 대책에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기 초마다 학교폭력 실태조사가 이뤄지지만 대책은 제자리걸음이라는 것이다. 각종 제도에도 불구하고 사각지대가 남아 있다면 학교폭력은 더욱 은밀하게 이어질 수밖에 없다. 조정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학가협) 회장은 “학교폭력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교사의 눈’”이라며 “학생들의 학습공동체와 생활공동체가 겹치는 기숙사에 폭력의 사각지대가 남아 있지 않은지 먼저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영국의 중·고교 ‘오픈 아카데미(Open Academy)’는 학교의 벽을 허물고, 화장실 맞은편에 교사 휴게실을 배치하는 등 적극적으로 사각지대를 없앤 사례”라며 “우리 교육 당국도 폭력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대안 마련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진주외고의 법인 이사장 이모(61·여)씨는 이날 법인 이사장직을 사퇴했다. 이씨는 고영진 경남도 교육감의 부인으로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남편을 돕기 위해 학생이 사망한 다음날에도 유아교육 관련 행사장을 찾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수현 기자, 진주=이영재 기자 siemp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