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의구] 아동학대와 동반자살
입력 2014-04-15 02:31
생활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일가족이 지병과 실직, 가난으로 한계상황에 내몰린 여러 정황들이 드러나 동정심을 자아냈다. 집주인 앞으로 ‘죄송하다’는 유서와 함께 집세·공과금 70만원을 남겼다는 보도는 이들이 허술한 사회안전망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면서 끝까지 이웃에 대한 배려를 잃지 않았다는 증좌로 받아들여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사건이 불거지고 1주일쯤 뒤 편집국으로 이메일 한 통이 날아들었다. 국제 아동보호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이 보낸 공문 형식의 편지였다. 송파 사건은 60대 어머니와 30대 성년 딸의 경우였는데도 경기도 동두천과 광주, 전북 익산 등지에서 이들을 모방한 미성년 자녀 동반자살 사례들이 잇따르자 의견서를 보내온 것이다.
아이 생명은 부모 소유 아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주장은 ‘부모와 자녀의 동반자살’ 사건이란 건 있을 수 없으며 ‘자녀 살해 후 부모가 자살한’ 사건만 있을 뿐이라는 요지였다. 자녀는 부모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재산이나 소유물이 아니며 부모의 처지가 아무리 절망스럽다고 해도 자녀를 죽일 권리는 없다는 주장이었다. 자녀의 목숨까지 끊게 하는 것은 명백한 살인이라는 지적은 매우 적확했다. 이를 그저 동반자살이라고 보도하면 잘못된 인식을 확산시킬 위험성이 있다는 충고에는 낯이 뜨거워졌다.
지난 11일 경북 칠곡과 울산에서 열린 계모의 의붓자식 학대·살해 사건 재판은 공분을 일으켰다. 학대의 양태가 처참해 보도하기 꺼려질 정도였다. 8세 여자아이를 20차례 밟고 이틀 뒤에야 병원에 데려가 숨지게 하고, 소풍날 아침 의붓딸을 55분간 때려 갈비뼈를 16개나 부러뜨려 숨지게 했다니. 어른들의 패륜에 분노가 치솟고 미온적인 사법부와 법체제도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미성년 자녀 학대·살해 사건과 가족 동반자살 사건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매우 다르다. 학대 사건에는 당사자를 잡아먹을 듯 흥분하지만 동반자살에는 ‘어쩌다 저 지경까지’라는 동정심에 혀 차는 소리가 따라가기 일쑤다.
그러나 냉정히 보면 두 사건은 자녀의 생명권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의사결정 능력이 없는 미성년이나 심신미약 자녀의 생명을 임의로 빼앗는 것은 자녀를 학대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범법행위다.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고 처벌받을 대상이 사라졌다는 차이는 본질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자식이 잘되라고 훈육하다 죽였다는 변명이든, 자식이 나처럼 못 되지 않도록 데려간다는 핑계든 범죄를 정당화할 논리는 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는 어른과는 다른 기회와 삶의 가능성이 있다. 부모의 임의적인 선택으로 이를 송두리째 빼앗는 것은 월권이다. 아이의 삶은 어른의 종속물이 아니다. 어린이날을 제정한 소파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를 내 아들놈, 내 딸년 하고 자기 물건같이 알지 말고, 자기보다 한결 더 새로운 시대의 새 인물인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식 살해 후 자살도 범죄행위
자녀의 생명을 마음대로 빼앗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부모들에게도 응분의 분노를 느껴야 한다. 자녀의 생명을 부모의 소유물처럼 보는 뒤틀린 인식을 바로잡아야 한다. 부실한 사회안전망뿐 아니라 무책임한 부모를 양산하는 사회 분위기나 무분별한 성문화에 일조한 먼 공범자는 아닌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 어른들의 월권이나 편견에 어린 목숨이 앗기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어린이는 신이 인간에 대하여 절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 땅에 보낸 사신이다.”(타고르)
김의구 편집국 부국장 egkim@kmib.co.kr